짧은 캘거리 여행기

태어나서 처음 본 에메랄드 색 윤슬에 대하여

by 미스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으러 한 달 정도 캐나다 캘거리를 다녀왔다. 보통 캘거리를 간다고 하면 일단 캘거리라는 곳을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고 몇 번을 캘거리, 캘거리라고 말하여 도시 이름을 주입하면 왜 하필 그곳을 가는가 하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나도 꼭 캘거리를 가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밴쿠버, 토론토 그 뻔한 곳들을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한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는 살벌한 도시를 그래도 가장 지낼만한 시기에 다녀와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해외를 가면 크고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 로키산맥과 밴프가 있는 캘거리가 조금 더 구미가 당겼다.


어디를 가든 내 마음이었다. 걱정스러운 건 내 통장 잔고일 뿐, 그조차도 여유 있게 해외에 있어보고 싶다는 마음속 허영을 꺾을 순 없었다. 캘거리를 간다면 차를 렌트하고 도시와 인근의 작업하기 좋은 카페나 찾아다니며 할 일을 하고 집에서 요리도 간간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 오자는 심상이었다. 한데 막상 숙소에 떨어지고 나니 이 동네에서 무엇할 게 없을까 찾게 되었고, 기가 막히게도 7월에 캐나다 데이와 스템피드 축제가 있어 생각보다도 다이내믹한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날씨의 동네였다. 한국은 때 이른 7월의 찜통 같은 더위에 사람이 쓰러져 나가는 일도 생기건만 이곳은 일몰이 오후 9:50분일 정도로 긴 한낮을 유지하지만 바람이 불면 맨 살에 한기가 느껴져서 꼭 얇은 외투를 챙기거나 긴 팔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겨울에는 오로라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겨울의 맹추위는 단단히 각오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다.


캐나다 데이에 맞춰 진행한 야외 축제에는 잔디밭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섞여 앉아 내가 잘 모르는 로컬 컨트리 밴드 가수 음악을 들으며 지는 노을을 감상했고 근 2주간 열리는 스템피드 축제 때는 Don Toliver, Diplo, Amine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Don Toliver 공연은 꽤나 살벌한 경험이었는데 광기 어린 팬들의 뜀박질과 인파의 압력에 휩싸여버려서 숨을 쉬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 버렸다. 결국 가드에게 도움을 청해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 뽑히듯 인파에게서 뽑혀 나와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Don Toliver의 인기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스템피드 축제가 북미 최대의 축제라고 들었는데 정말 북미 최대일지 모르지만 누가 그건 아니지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싶을 만큼 스케일도 크고 기간도 긴 축제였다. 캘거리가 이 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캘거리에서의 일정에서 가장 설레는 건 밴프여행이었다. 긴 산맥을 따라 펼쳐진 트레일, 트래킹 코스들과 곳곳의 국립공원 그 안의 호수들의 자연이 버무려진 공간을 얼른 방문하고 싶었다. 나는 같이 여행해 본 친구가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로 날씨 운이 안 좋다. 해외여행을 가면 항상 비가 오는 날이 껴서 어딜 갔을 때 날이 좋기만 해도 참 기분 좋은 여행지로 각인이 남았다. 애석하게도 밴프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주도 흐린날와 덜 흐린 날이 오락가락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밴프와 그 일대는 워낙 크고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보니 하루 안에 다 끝내고 오겠다는 불가능하고 숙소와 밴프가 멀지 않아 방문할 지역을 몇 군데로 나눠 당일치기를 여러 번 하는 식으로 전략을 짰다. 역시나 그 여러 번의 날이 모두 맑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Lake Louise, Moraine, Bow Lake를 갔던 때는 날이 꽤나 좋아 반짝반짝 물색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Bow Lake viewpoint였는데 저 멀리서 viewpoint가 보이는 순간부터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태어나서 그런 물 색은 처음 보았다. 이게 정말 에메랄드색이구나, 물이 이런 색을 낼 수도 있구나, 내가 지금까지 봤던 물은 뭐였지, 저 색을 담고 싶다 내 방이든 옷이든 물건이든 어디든 저 색으로 다 칠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게 만드는 아름다운 색이었다. 이런 물색을 이곳에서만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서 보고 있어도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차갑고 깨끗한 바람과 더 차가운 물의 온도와 아무런 더러움을 맛보지 못한 것 같이 반짝이는 물빛은 역으로 내가 더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청량한 거룩함이었다. 사진을 여럿 찍었지만 역시나 그 반짝거림이 담기지 않아 이건 남겨야 해 싶으면서도 사진을 찍을 맛이 별로 나지 않았다.


다른 날에 Lake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Lake Louise를 찾았는데 이때는 이미 여러 Lake들을 보고 왔음에도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 곳이 많구나, 이걸 모르고 돌아가신 분들은 조금 억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맑은 Lake Louise위를 유유자적하게 카누로 떠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물 위에 떠있으면서도 날고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장관이었다. 뾰족뾰족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 바로 아래 반짝거리는 에메랄드 빛 물색, 구름이 해를 가렸다 보였다 할 때마다 촤르르 쏟아지는 윤슬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간의 아픔들도 앞으로의 아픔들도 그냥 흘러가는 것이겠니, 흘려보낼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물색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따뜻한 색감의 아름답고 맑은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걸어 터질 것 같은 종아리와 허벅지와 고갈된 체력으로 표정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도 그런 생각이 스쳐가게 만드는 곳이니 잔인할 정도로 낭창한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었다.

캘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날 좋은 때에 Lake Louise 위의 카누는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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