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_스트로베리 쇼콜라는 틀리고, 딸기 시루는 맞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직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by 옆집여동생

바게트나 크루아상, 식빵처럼 스테디셀러인 빵이 있는가 하면 한 때를 풍미하는 빵들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디저트’가 절대 강자로 자리 잡은 이후부터 베이커리는 유행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고, 22년에는 도넛, 23년에는 베이글, 24년에는 소금빵이 유독 인기였다. 물론 나는 스테디셀러도, 유행빵들도 골고루 사랑해 주는 박애주의적 빵순이지만, 워낙 베이커리 업계가 레드오션인 만큼 빵집 운영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넛이나 베이글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트렌드를 타고 있지만, 훨씬 더 전에 유행했던 마카롱이나 대왕카스테라 같은 것들은 그 많던 가게들이 요즘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가지 빵만 파는 빵집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90년대의 빵집은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종류의 빵을 진열해 놓고 파는, 식빵도, 크림빵도, 소보로도, 소시지빵도 있는 종합 베이커리의 형태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전히 그런 추세였다. 그즈음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언니를 보러 도쿄에 놀러 갔었는데 타르트만 파는 집, 식빵만 파는 집과 같이 한 가지 빵만 파는 빵집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종합 베이커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료를 아끼지 않은 고급진(?) 맛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왜 우리나라엔 이런 게 없을까, 내가 가서 하나 차리면 대박 나지 않을까 하는 누구나가 하는 상상창업을 백 번도 더 하는 사이에, 200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으로 하나의 아이템을 유행템으로 미는 빵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럼 이런 하나의 아이템을 미는 빵집 사장님들은, 그 빵의 유행이 다하고 나면 그냥 망하는 것일까. 물론 안타깝게도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전략적이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장님들은 다음 유행을 예측하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갈아타거나, 아니면 유행과 상관없이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베이커리 업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인만의 길을 개척할 것이다. 이런 곳들을 뚝심 없이 뜨내기 장사하는 곳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동네에서 몇십 년 동안 우리에게 친근한 빵들을 기교 없이 우직하게 파는 빵집도, 시류를 읽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빵집도, 빵순이의 입장에서는 이제 일본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아껴주고 싶은 소중한 K-빵집들이다.




늘 그렇듯이 갑자기 사회생활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나의 커리어가 꾸준하게 한 자리에서 스테디셀러를 파는 빵집보다는, 그때그때 트렌드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는 빵집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15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직을 꽤 많이 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한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그렇게 철새처럼 하냐고 하기도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 어떤 회사에서든 나에게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했고, 나에게 돈을 주는 만큼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몸 담았던 곳을 떠날 때에도 괜히 죄인이 된 거 같은 기분보다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새로운 경험을 위한 설렘을 가지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이직 면접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은 ‘이전 직장에서 나오려는 이유는 뭔가요?’이다. 사람을 뽑고 훈련시키고 관리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모두 비용이므로,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또 이전 직장에서 나오려고 했던 것처럼 금방 나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고, 명확한 근거를 듣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뽑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구직자의 입장에서 ‘이 질문이 진짜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하는 질문일까?’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나를 뽑고 싶어서 하는 질문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보통 재직 기간으로 그 사람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보수적인 회사는, 이직이 잦은 지원자는 서류에서부터 통과시키지 않는다. 나에게 면접의 기회를 줬다는 것은, ‘이력서상 너의 경력이 꽤 마음에 드니까 네가 실제로 괜찮은 사람인 걸 증명해 봐!’라는 것인데, 이직 이유도 그것을 증명하는 것 중의 하나의 질문일 뿐이다. 내가 단순히 사소한 스트레스를 못 견뎌서 이곳을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커리어 패스, 면접 보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비전이나 아이디어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원자가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얼마나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줄 아는 사람인지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단순히 대왕 카스테라가 안 팔리기 때문이 아닌, 소금빵의 시대를 미리 예측한 빵집 사장님처럼.




이미 몇 번의 이직 경력 때문에 새로운 시작이 걱정되는 누군가가 있다면, 겹겹의 나이테가 더 아름다운 식감을 만들어내는 바움쿠헨처럼 내가 걸어온 길에 더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전국구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성심당의 oo시루 시리즈도 처음부터 그 이름은 아니었다. 처음에 ‘스트로베리 쇼콜라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초코 시트의 딸기 케이크를 출시했는데 판매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사장님 와이프의 아이디어를 적용해 ‘딸기 시루’라는 이름을 붙인 후부터 지금과 같은 초유의 웨이팅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나의 본질에 자신 있다면, 장점이 최대한 드러나게 나를 표현하는 것도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제는 ‘자주 회사를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커리어의 새로운 단락을 시작할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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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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