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R&R, 전쟁의 서막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을 간과한 당신에게

by 옆집여동생

회사 생활에서 가장 많은 분란을 일으키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R&R이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R&R은 Role and Responsibilities의 약자이다. 주로 같은 팀 안에서, 또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명이서 진행할 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리더에 의해 담당 업무가 배분된다. 업무를 나눠줄 때는 당연히 가장 적임자에게 업무를 배분하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 팀장이 되어서 리더 업무에 서툴거나 나누어야 할 업무가 무 자르듯이 나누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종종 업무 배분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다.


적임자가 아닌 사람에게 업무를 배분하거나 특정인에게 업무가 몰리는 것은 논외로 하겠다. 일정, 개인의 역량, 업무의 중요도 등 업무 배분에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를 받는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나누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일단 넘어가자. 내가 생각하는 R&R을 나누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다음의 두 가지이다. 하나의 일을 2명 이상이 담당하게 될 때, 특정 업무의 담당자가 1명도 없을 때. 전자의 경우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코스트와 감정 소모가 발생하며, 후자의 경우 완료 일정이 닥쳐올 때쯤 급박하게 ASAP 폭탄으로 누군가에게 던져진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중 더 많은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인 하나의 업무를 복수의 인원이 맡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 광범위한 분량의 업무를 여러 명이서 분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업무라고 해도 각자의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업무가 잘 배분된 것이다. 업무의 중복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같은 역할을 여러 명이서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내 경험 상 대부분의 경우 싸움이 나던지, 누구도 그 업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발효가 필요한 빵의 경우 대부분의 베이커리에서는 빠르게 빵을 발효시킬 수 있는 이스트를 사용하고, 조금 더 깊은 맛과 텍스처를 원할 경우 밀가루와 물을 발효시켜 만든 자연 효모인 발효종을 사용하기도 한다. 무엇이 더 좋다기보다 상황과 목적에 맞는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 하나의 빵을 만드는 데 이스트와 천연 발효종을 같이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스트는 빠르게, 발효종은 천천히 작용하기 때문에 두 재료가 동시에 사용되면 발효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반죽이 과발효되거나 고르지 않게 부풀고, 이스트의 강한 발효력 때문에 발효종 특유의 깊은 맛이 묻혀버린다. 결과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실패한 빵이 나올 것이다.


나에게 맡겨진 역할이라는 건, 그 일을 잘했을 때 보상과 못했을 때 평가의 기준이 되고 연관된 조직의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근거가 되어주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회사의 리더들이 R&R을 명확히 나눠주지 않아도 가야 할 방향만 명확하고 적절히 당근과 채찍만 주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 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주인 의식’이라는 건 진짜 회사 주인이 아닌 이상 창립 멤버로 스톡옵션이라도 두둑이 받은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일뿐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원하기보다는, 한 가지 빵에는 한 가지 발효제만 쓰는 상식을 따라가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그리고 R&R을 잘 나눠주고 싶기는 한데 상세 업무를 몰라 어떻게 나눠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육감으로 나누지 말고 제발 좀 조직 구성원들에게 물어보자.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디테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빵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정확한 계량과 순서를 지키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소위 ‘손맛’이라고 하는 감이 중요한 한식과는 달리, 미세한 소금이나 버터의 양, 계란을 넣는 타이밍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베이킹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직장생활은 이런 베이킹 과정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정확하게 나누어진 역할로부터 책임감도, 업무 성과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맛있는 빵도 만들어진다. 당신이 만약 누군가의 역할을 정해주어야 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빵을 먹을 때마다 이 간단한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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