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의 여름: 감독판

사부작, 거리는 사랑: 밝고 짧게 타오를 때 가장 아름다운 거야

by 연하

1.


모처럼 여름인데 학교나 집에만 있는 건 낭비야.

식물들이 볕을 향해 어긋난 팔을 벌리고, 눈 감은채 태양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니.

몸에는 선크림을 안 발라요. 비타민 D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고등학교 생활에서 유일한 의미는 사랑인 듯해.


세계사나 국어 작품을 배우는 건 즐겁다.

영어도 외국에 나가면 꽤 쓸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한다.

미술도 수다 떨며 아무 그림이나 그리다 보면 답답함이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어.

음악시간에 보는 뮤지컬도 재밌다.


고등학생인 난 아직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건강하지 않은 육체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건강한 몸. 학교는 일 년 동안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을 만들어준다. 나에겐 사랑이 전부다. 남아도는 건 시간이고, 여름의 공기는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주변에 울고 있는 건 매미뿐이다. 모든 감정이 새로워.


야자 시간엔 귀여운 토끼가 그려져 있는 작은 공책을 한 권 펴서 시를 적지만,

가끔은 새로 쓸 소설의 주인공을 생각하기도 한다.


2.


그. 러. 나. 어느 날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물이 고인 것 같다. 빼내려고 통을 거꾸로 놓고 흔들어대도 절대 빠지지 않고 고여있다.


너는 너무 일찍 피어버린 꽃. 내 심장에서 피어난 꽃.

감자의 싹처럼 나를 아프게 해. 멍들게 해. 파내면 또 아물게 해.


여름날의 두터운 공기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뺨을 감쌌다, 치마폭 가운데서 휘 바람을 일으켰다, 빠져나와 이마와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들까지 모조리 빼앗고는 얄밉게 도망간다.


여름의 끝무렵이 되면 장마와 함께 베갯잇이 젖어간다. 눅눅하고 기분 나쁘게 무거운 공기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건 결국 온 마음으로 여름을 느꼈던 거야.


기억력 손상에 맥주가 좋다는 걸 듣고 집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마셨다.


검정치마의 John fry를 들으며 등교한다.



3.


눅눅해진 마음은 어느새 끝난 여름을 지나, 쌀쌀한 가을을, 매서운 겨울을 통과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여름.

모처럼 여름이다. 이번 여름은 쨍쨍한 볕 아래 마음을 빠짝 빠짝 말리고 소독해야겠다 생각했다.


여름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하루 종일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여름은 매 년 마음을 어지럽힌다.
끈적한 공기가 폐를 적시고, 계속 살아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저 좋은 노래를 내 안에 넣고, 나른함으로 채우고 싶어.

혹사시키고 싶지 않다. 몸을 사리고 싶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완전한 상실과 그걸 겪은 몸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어.


사람은 갑자기 없어진다. 졸업식, 같은 이벤트.

다들 어디론가 다들 사라져 버려 인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된다.

현대문명에 의하여 그들은 어쩌면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


선풍기를 틀고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워 눈을 감으면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다.

7년 만에 땅 밖으로 나와서 하는 거라곤 짧은 생을 목놓아 슬퍼하는 것밖에 없는 매미야,

넌 참 불꽃같네. 여름만 살고 죽는다며.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우는 건 매미만이 아닌 듯했다.


밝고 짧게 타오를 때 가장 아름다운 거야 - 검정치마 Cicadas(매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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