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고 나니, 황폐해진 정신에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다. 1차 시험은 발악하며 통과했다지만 이런 피폐해진 정신상태로는 2차 면접에서 헛소리할 것 같다는 위험을 자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었다. 냉수마찰과 같은 각성을 기대하고 작년 12월부터 매일 헬스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계절은 한 바퀴를 돌고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과거를 회상하다 나른해진 찰나에 손에 힘이 빠졌고, 손안에 있던 무거운 원판은 그대로 엄지발가락으로 낙하했다. 찰나의 회상이었지만 대가는 확실했다. 엄지발가락 골절, 3주간의 깁스.
누군가를 회상하다 원판을 떨어뜨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어제까지 살과 발톱 사이에 피처럼 고인 그는 사라지지 않았고, 내 몸에 남은 그의 흔적은 나로 하여금 그를 계속 상기하게 했다. 고문과 같았다. 마치 연인의 이름을 타투로 새겼지만, 감상의 변화로 지우려 발버둥 치는 연인같았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너는 죽었다. 너는 내 안에서 죽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부패시킬 뿐이다.
내 신체의 일부가 죽었다.
의사에게 피를 빼달라고 애원했다. 발톱이 나에게서 분리되어 나를 고통스럽게 할까 두려웠다. 폭포수처럼 손으로 아무리 막아도 피가 솟아 나오는 시기를 지나자, 다시 구멍을 내고 피를 빼는 것이 싫어 하루는 내 안에 그대로 고이게 놓아두었다. 그 사이에 그것은 서서히 말라가 몸 안에 말라버린 흔적을 남겼다.
그와 나를 이어주었던, 두 사람 주변을 흐르던 한강의 물도 시간의 흐름 앞에선 생명력을 잃는다. 그 물은 우리의 시선에 닿고, 돌에 부딪힌 후 어느 새벽의 바람과 맞닿아 서서히 말라갔을 것이다. 이제는 그날 너와 나의 손 위에 있었던 미세한 땀의 촉감도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내 엄지발가락 끝에서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지난 몇 주간 그 조각이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바랐다. 태생부터 생명력이 강한 것들에 대한 맹렬한 욕망이 있었던 나는 이 건조하고 생명이 없는 조각이 활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고,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소망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떨어져 나간 오늘, 그것을 찾아 보관해두고 싶어졌다. 분명히 이 순간이 오기를 바랐다는 기억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매일 밤 몸을 뉘인 매트리스 옆에서 딱딱한 조각이 밟혔다. 잠을 자다 생의 끝을 맞이한 고인이 된 것 같은 평안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억지스러워질 때쯤 나는 재생되었다. 물이 마른 흔적도 몸에서 점점 없어져 간다. 물이 마른 흔적을 없애는 방법은 더 많은 양의 물을 흘려보내는 것뿐, 가뭄이 왔다면 또 다른 홍수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뿐 다른 방법은 없다. 여전히 너와 내 앞을 잔잔하게 흐르고 있던 물과 그날의 대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형태라기보다는 그림에서 느꼈던 생동감과 비슷하다. 그렇게 너는 나에게서 떨어져나와 내 방 안에 전시되었다.
달리 '기억의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