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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 Sep 21. 2024

선(善)의 존재 이유

결국 자신의 힘으로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

그녀는 틴토 데 베라노 한 잔을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저에겐 작품을 선택할 힘도, 배역을 선택할 용기도 없었던 거예요.

하루 종일 회색 옷을 입어야 하니 그 공연 내내 우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연습할 때는 사복을 입고 싶었는데, 연출은 그럼 그 역에 몰입할 수가 없다고, 웬만하면 회색 옷을 입으라고 하더군요.

헤어스타일은 숏컷. 머리 감기는 편했어요.


근데 이 연극이 아니면 저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어요.

태생이 머리가 똑똑한 것도 아니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해요.

나한텐 연기.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냥 메소드 연기를 해버린 것 같아요.

상대배우의 애드립이 조금 힘들었달까.

너무 예상치 못한 애드립을 하니까.

매일매일 대처하는 것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저는 몰입을 깨지 않고 제가 맡은 배역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저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어찌 됐든 공식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애초부터 작품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상대 배역도 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분석이나 현시대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애드립을 치고 실수도 잦으니, 저도 막판에는 의욕을 잃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어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특히 상대 남자 배우의 일관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는 즉흥성에 취약했죠. 제가 조금만 대사를 다르게 쳐도 표정이 굳기 마련이었어요. 그중 k와 같이 하는 공연이 좋았어요. 그와는 저녁 공연을 함께 했는데 그때 예매율이 가장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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