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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Jul 11. 2020

나는 오늘도 요가하는 마음으로 넘어진다

실패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어느 퇴사자의 요가와 글쓰기 수련기

가을 햇빛이 눈부시던 작년 10월, 나는 제주의 낯선 사람들 틈에서 아사나를 하고 있었다. 요가를 제대로 배워본 적 없던 나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홀리듯 3박 4일의 요가 워크샵을 신청했다. 매일매일 긴장되는 업무에 즙 짜내듯 몸과 마음이 진력나있던 시기, 요가 수련은 기적처럼 날 회복시켜줄 것만 같았다. 그 때 나는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한 상태였다. 한창 열심히 일하다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말 내 마음 속에서 찾는 것이 무엇인진 알지 못했다. 머릿속에 안개가 꽉 찬 채로 강아지들이 반기는 시골 마을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수련자들을 처음 만났다. 어색한 것도 잠시, 옷을 갈아입고 수련을 시작한 동료들은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능숙한 몸놀림으로 요가 동작을 행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요가 강사들 아니면 최소한 몇 년은 수련한 사람들이었다. 기초 동작조차 되지 않아 팔다리가 벌벌 떨리는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어쩌자고 여길 왔을까. 


그곳에서 나는 내 몸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만히 서 있는 자세부터 팔을 올릴 때의 자세도 형편없었거니와, 엎드린 자세에서 옆구리 옆에 손바닥을 대고 상반신을 올리는 코브라 자세를 할 땐 목이 뻣뻣했다. 소위 엎드려뻗쳐 동작인 플랭크를 하면 팔이 후들거리며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몇 동작을 하다 선생님은 수련을 잠시 멈추고 나에게 다가왔다. 동작을 몇 개 시키곤 다른 수강생들에게 내 몸의 움직임 및 떨림을 보여주며, 제대로 근육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초보 티가 팍팍 나는 내 몸은 요가의 기본 동작을 가르치기에 아주 좋은 모델이었던 셈이다. 땀이 뻘뻘 나고 숨이 거칠어졌다. 평안을 얻으려 왔건만, 번뇌가 찾아오고 있었다. 요가에서 몸은 곧 정신과 마음을 드러내는 지표와 같다는데, 몸이 이렇다면, 내 정신과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망가졌다는 뜻일까. 나는 그동안 소진될 대로 소진되었던 것이다. 


망가진 마음을 다스리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쉬는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건 내게 중요한 숙제였다. 나는 일 년 전 회사의 승진 권유를 거절했다. 외부에서 보면 큰 굴곡 없이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왔고, 누구나 겪는 직장 생활의 고충이 있긴 했지만 꾸준히 올라와 부장의 자리까지 꿰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진을 제안 받는 순간, 더 이상 올라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여기서 더 갈 순 없다는 건 확실했다. 다른 이유를 대며 거절을 한 후 나는 내 일, 내 삶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갈 필요는 없다. 새로운 방향의 길이 어디엔가 있고, 그걸 찾을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휴직을 앞둔 며칠 전 문득 마음속에 몽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글을 쓰자.’ 어릴 적부터 끼적이는 걸 좋아했던 나는 나에게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볼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요가 수련의 시작은 넘어짐이다. 그 때만해도 난 이 넘어짐이 내가 글을 쓰는데 어떤 의미가 될지 짐작하지 못했다. 요가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지만 아사나 즉 요가 동작을 수련하는 모든 수련자들은 더욱 고난이도의 동작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팔꿈치 아래팔만 땅에 대고 다리를 차올리는 핀차, 머리를 땅에 대고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다리를 들어 올리는 머리서기, 그리고 대망의 물구나무 서기, 일명 헤드 스탠드까지. 이 아사나들은 머리가 땅을 향하고 다리가 공중을 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대로 힘쓰는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칫 잘못 연습하다간 다치기 일쑤인 동작들. 하지만 자세를 완벽히 하기에 앞서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한 동작들. 3박4일의 짧은 시간동안 이 고급 아사나들을 숙련되게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선생님은 이 아사나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가르쳐주셨다. 잘 넘어지는 법. 한 번에 될 아사나들이 아니기에 연습할 때 넘어지는 건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넘어짐에 익숙해지고 잘 넘어져야 덜 아프고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제대로 넘어지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잘 넘어지는 법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니 손을 바닥에 대고 다리만 힘껏 차 머리 위로 올려 등 뒤로 넘기면 되었건만, 몹쓸 몸뚱이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까지 힘이 없는 내 팔과 복부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고 그에 반해 늘 앉아만 있던 무거운 하체는 힘없이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이 정도면 선생님이 대충 끝내고 다음 사람으로 넘기시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나는 암묵적으로 발차기를 하며 느꼈다. ‘아직은 아니구나.’ 나는 발차기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몸 상태라는 걸, 복부와 팔에 더 힘을 기르고 하체를 가볍게 한 후 도전할 수 있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나는 계속 발차기를 허공에 차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세수도 안 한 채 글을 썼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여행기를 정리하고 싶어 옛 사진, 일기를 들춰가며 근 5개월가량 매일 두 시간씩 컴퓨터를 앞에 두고 씨름했지만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언제 어디로 도착할지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일에 매달려 그저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 넘어지기에도 실력이 모자란 것이다. 


실패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발차기를 그만하라고 했을 때 나는 선생님이 나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더 놀라운 말을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건 트라우마가 돼요. 그럼 안돼. 되게 해야 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내가 물구나무서기 하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닌데 이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니. 결국 난 벽을 상대로 바닥에 손을 댄 채 다시 다리를 위로 차고 또 찼다. 어깨는 계속 무너지고, 팔은 후들거리고, 하체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러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난 끊임없이 다리를 올리길 반복했다. 어떻게든 이 실패가 내 속에 두려움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완성한 후, 난 몇몇 출판사를 공들여 골라 투고 메일을 보냈다. 클라이언트에게 메일 보낼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설레는 마음이었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보내기’ 버튼을 눌렀을 때의 떨림이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답장이 하나 도착했다. 편집자가 직접 꾹꾹 눌러 쓴 진심 어린 거절의 말이었다. 그 메일을 읽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제대로 넘어졌다는 것을. 성공가도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내게 필요했던 건 나아가기 위한 한 번의 실패였다는 것을. 실패했지만 이것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될 것임을. 나는 잠시 시원해진 머릿속으로 멍하니 메일을 바라보다 감사의 답장을 썼다.


요가를 수련할 땐 어제의 나와도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그저 하루하루 그날의 나에게 집중하며 수련하면 나의 몸과 마음은 어느새 더욱 높은 경지에 저절로 닿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물구나무서기에 실패해 지쳐 나가 떨어져 있는 나를 일으키고 내 손을 잡고 다른 수강생들을 향한 후 말했다. 


“여기 보세요. 처음부터 이 동작 됐어요 안됐어요?” 


내 손을 잡은 채 선생님은 수강생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모든 수강생들이 날 바라보며 한 명 한 명 대답했다. 


“아니요. 처음에 엄청 넘어졌어요.”

“저 여기 멍 진짜 많이 들었어요.”

“처음엔 다들 힘들어요.”


모두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진심을 담아 하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왜 승진을 거부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는지. 나는 인생의 물구나무서기를 위해 발차기를 하는 중이었던 거다. 더 난이도 있는 수련을 시작하며 계속 넘어진 수련자처럼 나에겐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실패가 필요했다. 수 없이 넘어지고 쓰러지며 새로운 동작, 새로운 인생을 완성하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실패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실패는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실패를 넘어서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된다. 그러기에 나는 한동안 계속 넘어지고 멍이 들겠지만 계속계속 발차기를 할 것이다. 언젠간 하늘 위로 다리를 쭉 뻗고 우뚝 설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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