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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Aug 12. 2020

여기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카파도키아


황토색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상천외하다. 

어쩜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을까?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에 있는 고대 지명, 카파도키아. 


매우 독특한 버섯 형태의 바위가 넓게 펼쳐진 지형으로 초창기 스타워즈 촬영의 모티브가 된 곳이기도 하다.

상부와 하부 바위의 성분이 달라 부드러운 하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어 없어지고, 상대적으로 단단한 상부만 남아 버섯 모양의 기괴한 장관을 만들어 냈다. 얼핏 보면 사막 같기도, 지옥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이곳. 

카파도키아.



이스탄불에서 밤새 1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월굽에 내리자 미리 예약한 투어 에이전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투어 차에 타니 야간 버스에서 만나 같이 온 호주인 나탈리 외에도 아저씨 뻘의 영국인 한 명, 일본인처럼 보이는 내 또래 남자 한 명, 터키인 한 명, 그리고 ‘슈가’라 불리는 유머러스한 투어가이드 슈르크가 있었다. 이들이 내 투어 친구들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붉디붉은 바위가 다른 지형과 달라 이름 붙여진 레드 벨리(Red Vally)였다. 붉은 바위 색이 꼭 장미꽃과 같다고 로즈 벨리(Rose Vally)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는 이곳을 천천히 하이킹하며 구경했다. 


로즈 벨리(Rose Valley)


까치머리를 하고 짙은 눈썹에 여느 일본 사람처럼 스타일리시한 내 또래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너 어디에서 왔니? 이름이 뭐야?”

“난 일본에서 왔어. 맥스라고 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짙은 눈썹에 힘을 주고 맥스가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이 맥스야? 난 현영이야. 일본 이름은 뭐야?”

“마시모토. 근데 그냥 맥스라고 불러.”


영어 이름을 가르쳐 준 일본인은 없었는데, 독특한 친구 같았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일본 이름을 가르쳐준다. 반면 중국인들은 영어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꽤 있다. 여느 일본인과 다르게 일본식으로 영어를 하지도 않았고, 어학연수를 하다 왔다는데 발음도 좋고 말도 꽤 잘했다. 같은 아시아 사람인 우린 금방 친해졌다. 



레드 벨리는 하이킹하기 매우 좋은 곳이었다. 어딜 가나 아름다운 풍경에, 겨울이지만 걷기 좋은 따뜻한 날씨였다. 



기상 천 외한 바위 산들이 나오질 않나, 끝도 없는 무덤이 펼쳐지기도 했다. 



맥스와 이야기하며 레드 밸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나왔다. 우린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앞에 웬 항아리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걸려있는 나무가 있었다. 이게 뭘까? 무슨 상징이 있을까 싶어 골똘히 보다 슈가에게 물어봤더니 그의 눈빛이 새삼 진지해졌다.


항아리가 무럭무럭 자라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신기하지? 나무가 어릴 때 조그만 항아리를 걸어놓으면 나무가 자라면서 같이 이렇게 커져서 열매가 돼.” 


뭐라고? 놀라서 쳐다보니 키득키득 웃으며 도망간다. 터키인들의 장난이란! 

터키석이라 부르는 토파즈 세공소와 지하 도시를 돌아본 후 우리는 숙소로 들어와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터키에선 어딜 가나 일정 시간이 되면 아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음 날, 아침 6시가 되자 여지없이 아잔(Adhan) 소리가 들렸다. 아잔은 이슬람교의 전통으로 매일 일정한 시각 5번 코란을 읽는 소리이다. 터키 전역을 다닐 때마다 매일 아침 6시, 12시, 오후 3시, 6시, 그리고 저녁시간에 한 번 더 전국에 코란 읽는 소리가 음악처럼 울려 퍼지곤 했다. 소리가 하도 커서 알람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슈가가 아잔 소리 일화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아잔은 항상 라이브로 해. 사람이 직접 스피커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날인가 아침에 그 사람이 읽다가 조는 거 있지. 하하.” 


종교 의무를 다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코란을 외쳤건만, 하느님도 이길 수 없다는 졸음! 하지만 이 아침의 아잔은 졸음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도 웅장하게 온 카파도키아에 울려 퍼졌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바둥대다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몽크스 밸리(Monks Valley)


기암괴석에 구멍을 뚫고 수도사들이 살았다던 몽크스 밸리(Monks Valley)가 둘째 날 우리의 첫 행선지였다. 정말로 커다란 바위 위에 조그만 창문 같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 첨성대에 있는 구멍과 비슷하다. 사람이 들어가 밖을 볼 수 있도록 뚫어놓은 작은 구멍 같았다. 뒤로 돌아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실제 들어가 보니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고, 안이 제법 넓었다. 과연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게 실감 날 정도로 아늑한 공간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안에 쭈그리고 앉아 그 시절 살았던 사람들처럼 벽에 기대어 재잘재잘 떠들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밖에서 보았던 창문으로 풍경을 보려고 뒤를 돌자, 세상에! 구멍이 사람 키만 한 것 아닌가! 밖에서 볼 때 작아 보였지만 실제론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는 큰 구멍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로 보이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리스 메테오라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옛날 옛적 수도사들은 종교의 힘으로 척박한 땅에 자신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갔다. 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이었을까 지옥이었을까? 원효대사 말마따나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일 것이다. 수도사들이 지냈던 흔적을 보노라면 바쁜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많은 걸 느끼게 한다. 우리는 뭐가 부족해 항상 목말라할까?


몽크스 밸리의 바위 수도원에서 포즈 취하고 있는 맥스


카파도키아는 어딜 가나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바위들이 계속 나타났다. 버섯 모양 바위는 기본이고, 스머프 마을처럼 생긴 바위, 꼭 빙하가 그대로 돌이 된 것 같은 형태의 바위…… 더욱더 놀라운 건, 이렇게 놀라운 지형 안에 사람들이 마을 군락을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투어를 하며 머문 괴레메 마을도 신비로운 곳이지만, 옛사람들이 만든 성당이나, 지하 도시 등은 경이롭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되었다. 지하 도시 같은 곳엔 예전에 4천 명 정도가 살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 



투어를 하다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드넓은 카파도키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광활한 풍경에 다들 넋을 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사진 찍기 바쁜 와중에 뭔가 이상했다. “어? 이거 바위야!” 내가 밟고 있는 곳이 처음엔 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건 마치 땅처럼 넓은 바위였던 것이다. “세상에! 이게 바위라니!” 우리는 다시 놀라움과 기쁨에 팔짝팔짝 뛰며 드넓은 바위를 이리 왔다 저리 왔다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넓은 바위는 태어나 처음 본 것 같았다. 한참을 놀다 보니 저 멀리 조용히 걷고 있는 폴이 보였다. 폴은 매우 점잖은 영국 신사였다. 가끔 영국식 유머를 던지긴 했지만 그리 재밌진 않았다.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고, 존재감이 그리 있진 않았지만, 가끔 말없이 웃어주는 폴이 나는 좋았다. “폴! 우리 사진 찍자.” 폴은 흔쾌히 나와 함께 드넓은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땅바닥 같았던 드넓은 바위 위에서 폴과 나.


이틀 간의 투어가 끝나고, 나와 나탈리, 맥스, 폴은 저마다의 일정으로 밤 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를 떠날 예정이었다. 카파도키아는 매우 넓기 때문에 하루만 보진 않고 대부분 2일 이상 머물며 투어를 한다. 어제부터 함께 투어 한 나와 나탈리, 폴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호텔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하맘에 가겠다는 맥스까지 끌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나탈리와 어제 갔던 식당에서 다 함께 터키식 피자인 ‘피데(Pide)’를 시켜 먹고 폴에게 터키어를 몇 마디 배웠다. 


카파도키아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나탈리, 맥스는 이스탄불행 버스, 나와 폴은 네브쉐르 오토가르행 버스를 탔다. 기막힌 건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나탈리, 맥스, 폴이 모두 다른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스탄불행 버스로 갈아탈 폴과 네브쉐르에서 헤어지고, 난 안탈리아로 향했다. 처음엔 마냥 삭막한 사막 같았던 카파도키아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수도사들이 기도에 정진하며 지낸 성스러운 곳인 동시에 4천 명의 사람들이 만든 도시이기도 했다. 그리고 곳곳에 여전히 현지인들이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이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현생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내가 떠난 뒤 카파도키아는 눈 세상이 될 것이다.


폴에게 배운 터키어는 곧 잊어버렸다. 즐거운 여정이었지만 난 미련 없이 남쪽으로 떠났다. 다음엔 또 어떤 삶의 터전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제발 그곳은 따뜻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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