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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메일 돌리기

제 책을 받아주실래요?

by 하늘

독립출판으로 책을 인쇄할 때 창작자 저마다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고 싶어서 도전했던 것이라 초판 부수를 최소한으로 잡았다. 그랬는데도 텀블벅 후원자들에게 배송을 마치고 대략 절반의 책이 남았다. 애초에 입고를 위해 책을 인쇄한 건 아니었지만 텀블벅에서 대부분 지인들에게 책이 돌아갔기 때문에 남은 책들은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자연스레 입고를 위한 책방을 찾아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쉼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공간이 독립 책방이었다.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는 책방을 찾아내는 일은 나만의 보물을 찾는 은밀한 느낌이다. 조용하지만 은은하게 책방지기만의 분위기로 가득 찬 공간이 주는 인상은 정말 특별해서 좋다. 그렇게 여행할 때면 꼭 그 지역의 독립 책방을 찾아갔고 알음알음 알게 된 독립 책방 리스트가 생겨났다. 요즘은 대부분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어서 검색하여 찾아보면 프로필에 입고 메일 주소를 적어놓은 곳이 꽤 많다. 그래도 처음 책인데 직접 얼굴을 보고 전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의 인천부터 서울, 경기의 독립 책방을 우선으로 찾아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수도권 책방에서 더 이상 입고 승인메일이 오지 않았고 더 다양한 지역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독립출판물을 입고한 다른 작가들의 홈페이지에 기록된 입고처 등을 참고해서 책방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추가적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입고 메일을 돌리면 바로 승인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 처음 작품 하나만 냈다면 더욱이 내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덥석 입고 제안을 받아주기란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텀블벅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링크 주소도 남기고, 작가 소개와 책 소개 같은 기본적인 내용들을 적어서 입고 메일을 하나하나 보냈다. 온라인 스토어가 있는 책방은 표지와 내지 사진을 요청하시기도 한다. 내가 보낸 소개글을 보고 다시 입고 양식에 맞춰 보내달라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먼저 보낸 소개글을 보고 입고 승인 여부를 알려주셨다. 거절하더라도 정중하게 이유나 대안을 안내해주시는 곳도 있었고 애매하게 다음에 필요할 때 연락을 주겠다는 곳, 답이 없거나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읽지 않음으로 뜨는 곳도 있다. 보통 10곳에 입고 메일을 보내면 1,2곳에서 입점 허락을 받았다. 1/10의 확률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 것은 생각보다 전국적으로 독립 책방의 수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내 책은 처음에 전국 25곳에 입점을 했는데 그 말은 200건 이상의 메일을 손수 하나하나 돌렸다는 것.. 처음에 간소하게 보내던 메일을 비슷하지만 그 책방 상황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서 보냈다. 나의 부족한 책을 돌이켜봤을 때 과분하게도 많은 곳에서 허락을 받았다. 비교적 가까운 수도권은 대부분 직접 방문 입고를 했고 다들 기쁘게 책을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정성이라는 게 통할 때도 있다. 책방 저마다의 사정으로 입고 시 여유가 없을 경우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리는 책이 에세이류의 독립출판물이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인기척 없이 불쑥 책을 들이밀면서 '입고하러 왔는데요'하면 서로 민망해질 수 있다. 우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메일을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을 경우 기다리다가 우연히 서점지기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여쭤보면 다시 한번 재고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서점에 한창 입고할 시기에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린 북아트 페어에 참관하러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전에 일했던 서점 위치가 아트플랫폼이었고 서점 대표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서점에서 대화를 나누다 오늘 북페어를 함께 구경하러 가자고 하셨다. 어떤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찬찬히 책들을 구경하는데 어쩐지 익숙한 책방 이름들이 보였다. 입고 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없던 서점들.. 대표님이 셀러로 책과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찾아가서 입고 문의했던 책을 보여드리며 물어봤더니 받아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대면하여 입고 허락을 받기도 했다.


보통 샘플 1권과 판매 서적 5권이 최초 입고 수량이다. 대부분 위탁 판매를 하며 사업자 여부에 따라 5%의 공급률 차이가 있다. (대게 30~35% 공급률 적용.)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역들은 택배를 이용했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했는데 내 책은 96페이지의 얇고 작은 책인데도 여러 권, 자주 보내다 보니 택배비가 생각보다 부담이었다. 또 제주나 도서산간 지역은 추가 요금이 붙기도 한다. 나중엔 편의점 택배로 전환했는데 별 차이는 없었다. 편의점 택배를 이용할 때 팁이라면, 하루 전 날 예약하면 500원 할인 쿠폰이 생긴다는 것. 소소하지만 쏠쏠했다. 그래도 제주 산간 지역을 이용할 땐 수수료가 높아서 우체국 택배가 더 싼 것 같다..!


책이 나오고 3개월이 흘렀다. 이제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입고했고 중간에 재입고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직 재쇄를 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에 미판매 책방 두 곳에서는 책을 빼오기도 했다. 작가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입고 답변을 기다리던 지난 시간들이 소중하다. 정산은 즉시 이뤄지는 곳이 많이 없어서 더딘 속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내 책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전할 수 있어서 너무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한 분이라도 가끔 여행하고 싶은 날 꺼내보고 싶은 기쁜 책이 됐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꼭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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