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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굿즈 이야기

굿즈로 감동 주려다 감동받은 일

by 하늘

굿즈(goods)

명사| 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드라마, 애니메이션, 팬클럽 따위와 관련된 상품이 제작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텀블벅에서 굿즈는 필수 아닌 필수템이 되어버렸다. 굿즈 없이 단순히 메인 상품이 들어가도 되지만 다양한 굿즈를 함께 구성하면 좋다. 좋다는 건 솔직히 말해 마케팅 전략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책의 샘플 본을 받아보고 텀블벅 선물을 구성하면서 독립출판 책과 관련해서 어떤 굿즈를 만들지 고민이 되었다. 유사한 다른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니 엽서, 배지, 떡메모지, 책갈피, 마스킹 테이프 등 문구류의 굿즈들을 함께 구성하고 있었다. 사실 내 책은 드로잉 관련 책이라 드로잉이 들어간다면 어떤 굿즈라도 쉽게 제작할 수 있긴 했다. 내가 포토샵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기본 툴은 금방 배워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능력자 디자이너 친구도 있으며 안되면 외주를 주어 제작할 수도 있으니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떤 굿즈'를 함께 구성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당시 내 머릿속은 온통 책뿐이어서 굿즈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 없다기보다 내 역량으론 책 하나도 버거워서 그 이상의 굿즈에 신경을 쓰는 게 벅찰 것 같았다는 게 솔직하겠다. 하지만 단일 상품으로 구성했을 때 너무 심심한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굿즈를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을 때, 다른 대안을 생각해낸 것이 나의 한 때 취미였던 캘리그래피였다.


캘리그래피는 대학생 때 그저 취미로 몇 번 끄적였던 것이라(<공병각_나도 손글씨 잘 쓰면 정말 좋겠다> 책을 참고하여 입문했다.) 전문가처럼 잘 쓰지도 못하고 금액을 정해서 판매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됐다. 그래서 이벤트성으로 선착순 100분에게 무료로 원하는 문구를 적어주기로 했다. 선물은 책 1권, 2권 3권에 따라 20분, 25분(2권이니까 50개),10분(3권이니까 30개) 이렇게 총 100개의 캘리 문구를 쓰기로 했다. 5만 원 이상을 후원해주시는 분들께는 캘리그래피 액자를 선물했다. 생각보다 1권짜리에서 캘리그래피를 포함한 선물은 폭발적이었다. 하루 만에 마감되어 캘리그래피 없이 구매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1권에 30개로 할 걸 싶었다. 선물 구성은 중간에 수정이 안되어 아쉬웠다. 홈페이지에 수정은 못했지만 캘리그래피 선착순이 끝나서 아쉬워하는 지인들을 위해 결국 모두에게 써 드렸다.

캘리그래피 액자(좌) 캘리문구(우)


조금 과장하자면 책을 쓰는 시간과 캘리를 쓰는 시간이 비슷하게 들었을 정도로? 정말 몇 주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캘리만 썼던 것 같다. 배색이 은은하게 들어간 꽃한지에 책에도 소개했던 입문용 캘리 펜으로 끄적이다 맘에 안 들면 다시, 또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좋아서 했던 것이라 그랬는지 힘들거나 하진 않았다. 한지 느낌을 살리겠다고 손으로 둥글게 찢거나 자를 대고 반듯하게 찢고 그랬다. 누군가는 이것을 코팅해서 책갈피처럼 쓰고 싶어 했고,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서 좋아했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명언을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아해 주었다. 더욱이 나에게 뜻깊었던 것은 문구를 남기면 내가 후원자 명단을 받아볼 때 엑셀 파일로 한눈에 열어 볼 수 있는데 너무 감동적인 문구들이 많았다. 다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씩 품고 있던 예쁜 말을 고민해서 적어주었다. 평소에 친구들과 어떤 명언을 좋아하는지 얘기 나눌 일은 없으니까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사람을 조금 더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내가 디자인한 굿즈를 일방적으로 후원자에게 선택하게 하는 게 아니라 후원자와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왔던 문구.


그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적어준 몇몇 사람들이었다. 직접적으로 '축하해요, 쌤 꿈을 응원해요! 멋지다 응원할게! 기도할게!'라는 말도 있었고 문학적으로 풀어써 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여름날의 하늘' 이런 말들.. 그중에서도 나를 울린 말이 있었는데,


"비가 오든 먹구름 가득하든 사실,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이 문구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졸업 이후 대내외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들을 보내왔었고 그런 나를 가까이서 꾸준히 지켜봐 온 사람에게 듣는 말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문구가 정말 와 닿는데 비 오는 날 먹구름 가득한 하늘도 구름을 뚫고 그 위에 올라가면 파아란 하늘이 펼쳐진다. 우리가 쉽게 잊고 살지만 사실 하늘은 언제나 푸르렀다. 그게 나의 본질이라는 생각 하니 너무도 큰 위로가 되었다. 매일 맑은 하늘만을 기대할 순 없지만 날씨는 계절 따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것은 흘려보내고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늘 기억할 거다.


이후에 정말 굿즈다운 이벤트를 하고 싶어서 목표금액 200% 달성 기념 이벤트로 드로잉 한 해바라기를 스티커로 제작해서 모든 후원자에게 선물로 드렸다. 다들 좋아라 해주셨고 핸드폰 뒷면이며 노트북, 공책 등에 붙여주었다. 냉장고에 메모 붙일 때 쓴다는 후기도 들려왔다.^^ 굿즈를 통해 함께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어서 참 의미 있었다.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고 내가 부여하기 나름이다. 나의 삶에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이벤트가 있을까 싶고 정말 스티커를 볼 때면 코 끝이 시릴 정도로 뿌듯하다. 어떤 굿즈도 정답은 없지만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서 볼 때마다 제작과정의 따스함이 떠오를 그런 굿즈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표지 대표 이미지인 해바라기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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