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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어 슬픈 그대에게,

누구나 자기의 자리가 있다.

by 하늘

나는 이름 없는 작가다. 200여 건의 입고 메일을 돌리고 이름 없는 내 책을 흔쾌히 받아주신 책방이 25곳이나 되었다. 감사한 마음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중한 첫 책을 입고했다. 수도권은 최대한 직접 방문하여 입고했다. 서울이나 경기는 왕복 2시간 이상 걸리는 곳도 있었다. 그에 비해 입고하는 시간은 1분도 채 안돼서 끝났지만, 어떤 공간인지, 어떤 대표님이 그 공간을 지키고 계실지 참 궁금했다. 대부분은 정말 첫인상도 생각만큼 좋았고 관심 있게 책을 봐주셨다. 카페를 겸하는 공간에서는 갓 내린 커피를 대접받기도 했다.


그런데 한 책방(이하 A책방)에서는 입고를 하러 들어간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최초 입고 수량인 샘플 1권과 판매용 서적 5권을 쇼핑백에 담아 갔다. 샘플용 책은 책방지기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줄무늬 끈으로 포장을 하고 샘플이라는 포스트잇을 붙여갔다. 텀블벅에서 200% 달성 기념으로 손수 드로잉 한 해바라기 스티커를 제작해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었다. 텀블벅이 끝나고 스티커 수량이 조금 남아서 입고 초기 책방에는 소진될 때까지 드로잉 스티커도 함께 전해드렸다. 나름의 정성을 다해 소중히 전해드렸다. 3월 입학 날, 첫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는 엄마의 마음으로.

샘플포장(좌)과 비닐포장(우)


그런데 A책방에서는 샘플 책을 보시고 포장을 풀어보셨다. 예쁘게 포장해오셨다는 말에 기분은 좋았다. 천천히 책 안을 펼쳐보시는데 두근거렸다. "직접 드로잉 하신 거예요? 고생했네요."는 말을 들었다. 한 번 책을 휘리릭 넘겨보시고는 바로 옆 책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샘플 포함 6권을 책꽂이에 툭, 꽂아두셨다. 툭 내려놓는 행동에 살짝 당황하여 우두커니 서있으니, "아, 이쪽이 드로잉 책들을 모아 놓은 책장이에요."라고 하셨다. 안도를 하고 천천히 둘러보고 가겠다고 했다.


책장에는 주로 그림책들이 있었다. 내 책은 여러 그림책 사이를 비집고 책장 가장 왼쪽에 들어갔다. 바로 맞은편에는 유명 드로잉 작가의 작품이 한 테이블을 꽉 채워 메인으로 전시되어있었다. 굿즈부터 작가의 여러 책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고 소개글까지 플래카드로 벽면에 걸려있었다. 지인으로부터 들어봤던 유명 작가였다. 뭔가 부럽고 대단했다. 진짜 작가의 아우라가 비쳤다. 내 책도 어느 구석자리에 얇은 책등만 보이는 게 아니라, 따로 테이블 공간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표지 앞 면만이라도 잘 보이게 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과분하다며 입점한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려 책등사진을 찍고 나왔다.


입고한 책방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했다. 책방의 소식들을 듣고 같이 소통하고 싶어서. 사실 내 책을 어떻게 소개해주실지 기대하는 맘도 있었다. A책방도 간간히 글쓰기나 드로잉 클래스, 새로운 다른 책의 입고 소식이 업데이트되곤 했는데, 며칠이 흘러도 내 책과 관련해서는 아무 소식도 올라오지 않았다. SNS 홍보는 책방에서도 의무가 아니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오프라인으로 책방에 들러서 내 책을 구경해주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다른 지역 책방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입고한 지 열흘만에 재입고 요청을 해왔다. 10권을 요청하셨는데 당시 내가 가진 수량이 5권뿐이었다. 처음 재입고 문의어서 앞으로 재입고 요청이 들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재쇄를 알아보려 인쇄소에 문의를 했다. 그런데 인쇄소 사장님께서 많은 부수가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 위탁 입고이니 이미 입점한 다른 책방에서 소량을 회수 후, 재입고하는 방식을 추천하셨다. 그래서 고민하다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입고한 A책방에 문의를 드렸다. 책은 미판매 상태였다. 보통 모든 책이 소진되는데 4~5개월이라고 하니, 입고한 지 한 달에 홍보도 전혀 되질 않았고 당연했다. 문의했을 때가 주말이었는데 책방이 직장 근처라 직접 월요일에 방문해서 회수해가겠다고 했다. 오라는 답변을 받아서 문을 여는 줄 알고 갔더니 월요일은 휴무였다. 퇴근길에 걸어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지만 비도 내렸고 돌아서 집에 가는 길이 괜히 울적했다. 휴무일을 확인 안 하고 답변만 받은 채로 무작정 찾아간 내 잘못이라 여겼다.


다음 날 책방에 다시 들렀다. 어떻게 왔냐고 물으셔서 책을 회수해가겠다고 했다. 처음 입고한 날 책장에 넣어두신 그대로.. 책장에서 빼서 건네주시는데, 왜 이렇게 서운하던지. 절대로 하나도 팔리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홍보를 안 해주어서도 아니다. 그래도 새로 입고한 책인데 정말 샘플 한 권을 보이게 꽂아두질 않았다. 사실 샘플과 판매책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앞면까지 바란 것도 아니다. 책등을 꽂아두더라도 새로 입고한 책이라던지 어떤 표시도 없는 것. 구석자리라 함은 거기에 새 책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위치였다. 정말 내가 입고했으니 나만 보이는 그런 위치ㅠㅠ.. 맨손으로 책을 품에 꼭 안고 나왔다. 봉투 한 장 없이 그대로 꺼내 주실 때 너무하단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책을 주시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으시길래 오히려 내가 민망하여 "다음에 또 뵐게요.."라고 하며 나왔다. 분명 메일로 정중하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렸고 재입고 요청이 왔다면 축하할 일이라며 기뻐해 주셨는데, 진심이 아니었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사실 그분이 특별히 잘못하신 건 없다. 그냥 내가 자격지심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을 때 드는 아쉬움이다. 아무리 무명의 작가 책이라지만 다른 작품과 대하는 온도차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책을 데리고 나오면서 책에게 너무 미안함과 동시에 한 달 만에 빨리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빨리 빼올 걸 그랬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이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딘가에서는 내 책을 필요로 하니까.


사람도 똑같은 것 같다. 어딘가에서 무쓸모로 저기 구석 어느 틈에 자리를 배정받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한 곳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곳으로 가면 된다는 것을. 물론 그전에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테고.


이번 일을 계기로 사소한 모든 것에 나도 모르게 소홀한 적은 없을까 반성해보았다. 나의 첫 책이 당한 설움?을 기억하며 늘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있는 작은 존재들에게 조금 더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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