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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Nov 03. 2023

월급이 안 들어왔다

글 병아리콩

월급이 안 들어왔다, 오늘도. 퇴근길에 혹시나 싶어 모바일 은행 앱에 접속해 보지만 잔고는 그대로다. 하긴, 계좌에 돈이 조금이라도 입금되거나 출금되는 즉시 알림이 오도록 설정해 놨는데 핸드폰이 하루 종일 잠잠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니다. 괜히 쥐똥만큼 남은 잔고만 확인 사살당해 심란하다.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신호음과 함께 찍히는 버스비도 야속하게 느껴진다. 늘 그렇듯이 사람으로 가득 찬 내부를 비집고 들어가 귀퉁이 하나에 자리 잡는다. 곧이어 출발하는 버스와 함께 덜컹덜컹 몸이 흔들린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피곤한 퇴근길이지만, 끊임없이 잡념이 자라나 혼란스럽다. 덜컹덜컹.


월급날 근무 시간 내에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분명한 문제 상황이다. 사실, A사에서의 첫 월급을 떠올리면 그때부터 문제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나는 퇴사하는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월말에 입사했다. 다음 달 월급일인 5일이 아무 소식 없이 지나가길래, 그다음 달에 한 번에 급여를 받나 보다 짐작했다. 이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5주 치 급여는 정확히 5일 밤 10시 37분에 들어왔다. 돈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들어온 것이 이상했지만, 들어오긴 들어왔으니 잠자코 있었다. ‘월말 일주일 동안 일한 돈과, 한 달 일한 돈이 함께 입금되나요?’ ‘월급이 왜 밤에 입금되나요?’ 등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사측에 물어보지 못했다. 돈은 그 무엇보다 민감한 문제고, 나는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 하는 신입사원이니까.


이후 A사에 적응해 가며, 회사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되냐고? 마치 찢어진 종이 조각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과정과 같다. 처음에 주웠을 땐 이게 뭔가 싶고, 다음에도 주우면 종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다음에는 이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결국에는 분명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장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또 다른 직원의 퇴사, 외고료가 정산되지 않았다는 전화, 회사가 어렵지만 모두 힘내 보자는 상사의 말들. 이 모든 종이 조각들은 ‘회사 재정이 좋지 않다 → 회사가 많이 어렵다 → 회사는 거의 파산 직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A사에서의 일이 좋았고, 동료들이 좋았기에 애써 이 사실을 무시하려 했지만 결정적인 종이 조각을 마주하고 말았다. 월급일이 지나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평범한 5일, 역시나 퇴근 시간까지 급여가 입금되지 않았다. 동료들의 눈빛만으로도 그들 역시 같은 상태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화가 차올랐지만, 늦은 시간에 돈이 들어오는 경우가 흔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웃긴 일이다. 돈을 벌러 회사를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돈에 관련해서 ‘그러려니’ 넘어가곤 했다는 게. 러시아워를 해치고 집에 도착해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잠에 들기 위해 이불 위에 누웠을 때까지도 은행 앱 알림이 오지 않았다. 뭐지? 의아했지만 더 큰 감정은 분노였다. 내일 단단히 문제 제기를 하리라, 다짐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출근했을 때 회사는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웠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출근해서 회사를 뒤집어놓으리라 으르렁댔던 나지만 평상시와 같은 분위기에 기가 죽었다. 게다가 누구에게 항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A사는 규모가 작아 실무진인 에디터와 디자이너 외에 대표와 팀장급 두어 명이 상주하는 직원의 전부다. 대표는 회의와 외부업무 등으로 늘상 자리를 비우고, 다른 상사들은 정확히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 알지 못한다. 기본적인 근태 확인조차 하지 않는 체계이기에 업무분장도 확인할 수 없다. 상사들은 보통 그들끼리 식사하고 업무적으로 나와 엮일 일도 없다. a팀장이 회계와 재정 일을 주로 담당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결정권한은 전적으로 대표에게 있기에 a팀장에게 따지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항의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고 당장 해야 할 업무가 쏟아지자 나는 일단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우선 지금의 할 도리를 하자, 그러면 회사도 회사의 도리를 할 거야…’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일에 몰두하지만 내 안의 혁명가가 비명을 지른다. 이 상황은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나는 급여를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그러자 직장인 자아가 침착하게 말한다. 사측에서도 안 주고 싶어서 안 주는 게 아닌데, 괜히 분위기 악화시키지 말고 일단 기다려보자고. 그렇게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던 와중, 용감한 샐러리(?)가 a팀장에게 월급에 대해 물어봤다는 소식을 전한다. a팀장은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월급은 들어오지 않는다. 혁명가 자아뿐만 아니라 직장인 자아도 화가 나 미칠 지경이다.


끼익, 빨간 불에 버스가 급정거하자 몸이 앞으로 쏠리며 잡념에서 깨어난다. 지금 나는 두 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쥐똥같은 잔고도 바닥을 드러냈고 이대로라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작고 소중한 적금을 깨야 한다. 대표는 점점 더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성은 자금 조달을 위해서 분주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지만 내심 그가 직원 보길 꺼려한다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대표 얼굴을 보고 월급 얘기를 하려고 잔뜩 벼리던 일도 헛수고가 되었다. 톡으로 어렵게 임금체불에 대해 물으면 그는 자금이 곧 들어올 거라는 기약 없는 말만 반복한다. 나는 월급을 받지 못하고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지고, 최소한의 계획도 공유하지 않은 채 분노한 직원들을 회피하는 대표가 미워진다. 마침내 버스가 지하철역 앞에 멈춰 서자 서둘러 내린다. 환승하려는 수많은 직장인이 쏟아져 북적거린다. 문득 이 사람들은 제때 월급은 받고 사는 건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내가 과연 A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씁쓸한 생각을 하며 지하철로 갈아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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