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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Nov 06. 2023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글 샐러리

첫 월급날도 오기 전에, 퇴사를 앞둔 직원으로부터 회사 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업무 시간이 지난 다음이긴 했지만 하루가 가기 전에 입금 알림이 왔다. 내 기가 막히게 소박한 월급은 그동안의 카드 값과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상환하고 나니 금세 사라졌다. 괜찮아. 첫 월급이니까 당연하지. 다음 월급부터는 저금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두 번째 월급날, 역시나 퇴근을 할 때까지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달에도 하루가 가기 전에는 들어왔으니까, 퇴근 후에 들어오겠지. 나는 그렇게 방심했다. 12시가 지나고도 어떤 알림도 오지 않았다. 지난해,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던 계약직 일자리는 오전에 월급이 들어와 하루 종일 신난 채 업무를 했는데. 


다음날, 옆 자리에 앉은 병아리콩에게 넌지시 물었다. 월급 들어왔어요? 아뇨, 샐러리는요? 저도요. 빤한 문답이었다. 오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점심시간에 눈치를 살피다, 으레 이어지는 출장과 미팅으로 자리를 비운 대표님 대신 A팀장님에게 넌지시 여쭈었다. 저… 월급이 안 들어왔는데요.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아, 그거. 오늘 들어갈 거예요.”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감사한 건지. 최저임금에 준하는 월급이나마 떼먹지 않아 줘서? 친절하게 오늘 안에는 들어갈 거라고 말해줘서? 내가 화가 났던 건, 임금이 하루이틀 늦게 들어오는 상황이 아니라 임금이, 하루이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 물어보기 전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월급이 들어오기만 한다면야, 며칠쯤은 늦게 들어온다고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이고, 월급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준다, 안 준다, 늦게 준다, 언제까지는 준다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세 번째 월급날이 되자 심지어 월급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계약서 상으로는 아주 상식적으로 월급날과 공휴일이 겹치면 전날 지급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즈음 되자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회사라는 걸 깨달은 다음이었다. 4일 금요일, 당연히 안 들어왔다. 5일 토요일, 갑자기 대표에게 개인 메시지가 왔다. 월급은 월요일에 지급하겠다, 이번 달만 양해 바란다고 쓰인 간결한 메시지였다. 양해할 수 있지.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러나 월요일? 여전히 안 들어왔다. 심지어 팀원들과 이야기해 보니, 개인 메시지는 나에게만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가 직전 달 월말 회고에서 월급이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달라고 요청했던 건 맞다. 근데 그게 나한테만 말하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대체 이 비상식은 뭐지? 


다음으로는 월급이 밀리는 한 달 동안 말이 좀 많았다. 협업하는 회사의 자금 집행 지연 문제를 비롯해 대출 관련된 문제나, 법인 통장에 생긴 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월급은 계속해서 밀렸다. 순진하게 그걸 다 믿고 있었다니. 결과적으로는 퇴사를 하고 노동청에 방문하고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다 개뻥이었던 걸로 판명 났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회사가 나를 채용할 때부터 월급을 제대로 지불할 생각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나는 두 달치의 월급을 받고 네 달치의 업무를 했다. 못 받은 두 달치의 월급은 퇴사 후 대지급금으로 받았으니 회사는 꽁으로 네 명의 두 달치 노동을 얻은 셈이다. 이 일도, 함께하는 동료들도, 그리고 비상식적일 만큼 자유로웠던 업무 분위기까지도 사실 조금은 좋아했던 나는 퇴사할 무렵 정말 심란했다. 꿈을 이루는 중년 여성 롤모델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대표의 어떤 면들은 나와 닮았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지경까지 오고 나니 아쉬워할 이유도 없었고, 대표와 이 사업을 딱하게 여기는 것조차 사치였다. 


함께 입사한 병아리콩과 함께 적어도 1년은 일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입사 초기가 아득하게 먼 옛날 같다. 월급을 떼인 팀원 모두가 책을 좋아하고, 우리가 만드는 책이 좋고, 업무가 마음에 들어 박봉이라는 걸 감수하고도 모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박봉이라는 것도 그 박봉이 실제로 들어올 때의 이야기다. 아무리 업무가 마음에 들고 사람들이 좋고 회사가 마음에 들고 집이랑 가깝고 업무 환경이 자유롭고 어쩌고저쩌고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해도, 월급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쬐끄만 사회초년생 여자애들을 이렇게 등쳐먹다니. 결국 롤모델이고 뭐고, 나 같은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겠다는 반면교사만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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