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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an 28. 2017

결핍의 설원, 그 복판에 서서

네 번째, 내겐 없는 줄 알았던 갈증

아침의 나라에서 태어나 매일 인파 속을 헤매던 내게 그것은 허를 찌르는 돌발 질문이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결핍의 설원 위에서 하루의 경계는 희미했고, 나는 풍요를 박차고 일어나 결핍 속을 헤집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며 나를 자책했다. 한동안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믿었다.


“햇살을 몹시도 그리워해 본 적 있나요?”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 몸살 날 것 같은 날이 있었습니까?”


도시는 반복해서 물었고 나는 그저 아니오, 아니오 라고 답할 뿐이었다. 무릎 위 올려놓은 주먹에 이따금 힘을 줬다 놓았던 어느 면접에서처럼,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 앞의 나는 무기력했다.


혹한의 겨울 그리고 붉은 밤의 도시는 다양한 종류의 결핍을 내 앞에 끌어다 놓았다. 열 시가 되어서야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가 오후 네시면 사라지는 태양, 그 날 아침 최저기온만큼이나 차가웠던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면 빛과 온기가 간절해졌고 그림 같은 글자와 소음 같은 말들 사이에선 그게 무엇이든 익숙한 것을 갈구하곤 했다. 아침에 눈을 떠 창 밖의 풍경을, 이 도시의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순간과 텅 빈 점심 식사의 맞은편 자리를 바라보는 동안엔 사람을 그리워했다. 저녁 약속 없는 밤은 와인 한 병을 거의 비워야 겨우 끝이 났다. 잠시 빌린 공간에서 충분한 휴식은 바라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속삭임, 아니 방문 넘어 기척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잠이 들었다. 도망치듯 떠나온 땅에서 나는 갈증과 외로움을 떠안은 채, 빛을 잃은 광장과 주인 없는 거리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원망하곤 했다.


하루의 경계를 비웃듯 쉬지 않고 눈이 오면 하루를 오롯이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다. 코트를 두 벌씩 겹쳐 입기 시작했고, 발 끝을 보며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새 내 표정도 그 겨울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갈증은 하나같이 끝이 날카로운 것들이었다.



모스크바 남쪽 체레무쉬키Черемушки 어딘가의 이름 모를 골목을 걷던 오후, 예보에 없던 눈이 떨어지더니 곧 세찬 폭설이 됐다. 나는 남색 코트 위에 겹쳐 입은 회색 패디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금세 희미해져 버린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왠지 버거웠다. 발 끝을 보며 걷는 동안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산다는 도시는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었다. 끊임없이 발등에 쌓이는 눈을 쉼 없이 내차듯 걷는 동안, 마치 끝없는 설원 한 복판에 떨어진 듯 외로웠다. 갈증에 양쪽 턱 끝이 욱신거렸다.



내 가장 오랜 기억 속 그날에도 있던 엄마의 감자채 볶음,

반쯤 뒤로 젖혀져 침대 못지않게 편한 내 책상 의자,

거칠거칠하게 일어난 파란 자전거 가죽 핸들의 촉감,

지금은 없어진 여의나루 네 번째 나무 벤치 앞 원효대교,

영원히 사랑할 냉정과 열정사이 OST의 아홉 번째 트랙,

나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던 새벽 한 시 오십오 분.


한 걸음에 하나씩, 익숙한 것들을 떠올리며 내디뎠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잠시 멈췄고, 떠오를 듯 말 듯할 때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리고 더는 부를 것이 남지 않았을 때 낯선 대화가 시작됐다. “언제쯤 눈이 그칠까?” 소리 내어 내가 물으면, 같은 소리로 내가 답했다. 골목을 나설 때쯤 어느새 나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 날 이후 폭설이 하늘을 가릴 때면 어김없이 그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처음 이삼십 분이었던 대화는 점점 길어져 잠들 때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종종 그가 던진 놀라운 질문에 말문이 막혀 길게는 이틀 후에야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사이 갈증은 하나씩 잊혀갔다.



아침 열 시, 시선을 가득 채운 창문 너머 풍경이 조금씩 밝아지며 부채꼴 형태의 호텔 방은 금방 조명이 필요 없어졌다. 한 시간쯤 전에 눈을 떴지만 그대로 누운 채 이 순간을 기다린 나도 그제야 몸을 일으켜 아침을 맞이했다. 며칠간 이어진 눈이 그친 뒤 화창한 하늘이 마치 봄이 온 것처럼 반가워 문을 열고 샤워를 하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지하철을 타는 대신 아르바트 거리를 가로질러 붉은 광장으로 걷는 동안 만나는 아이들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샌드위치 값과 함께 짧은 러시아어 감사말을 건넸다. 그 날 오후, 모스크바에는 울 코트가 흠뻑 젖을 만큼 굵은 눈발이 날렸지만 그것이 더 이상 원망스럽거나, 결핍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붉은 광장에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축제가 열렸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붉은 축제였다. 나는 추위를 잊고 몇 번이나 그 광장을 돌았다.


윗등 언저리가 따끔따끔할 만큼 따가운 햇살, 파랑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색으로 펴 발라진 항구 너머의 바다. 모처럼 멋을 낸 흰 셔츠와 파란색 스웨터가 아무래도 이 도시, 바르셀로나의 오후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대여섯 명쯤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큰 벤치를 홀로 차지하니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더 바랄 것이 없다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순간, 문득 그날의 그 매서운 설원, 시큰한 갈증이 떠오른다. 그토록 간절해보았기에,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고. 이제 나는 그것을 새하얀 설원 속에 핀 빨간 꽃 한 송이로 기억하고 있다.





덧붙여,

제가 불교방송 BBS 라디오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에 출연합니다.

얼마 전 녹음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긴장한 탓에 횡설수설했지만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 책 이야기와 모스크바 미친 여행 그리고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왔어요. 방송은 1월 29일 일요일 오후 두 시입니다. 목소리로도 만나 뵐 수 있게 되어 무척 설레고 기쁩니다.

책이 출간된 지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리고 멋진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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