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땡스기빙 데이 퍼레이드 같은.
눈앞의 길보단 그간 걸어온 길. 여행의 경이는 주로 거기서 발견된다. 부르는 이 없어도 종종 뒤 돌아보고 이따금 고개 들어 응시하는 버릇의 이유랄까. 뉴욕에선 내가 그럴 때마다 무언가 일어났다. 이미 벌어진 뒤였거나.
시차란 건 지극히 당연하면서 또 너무나도 신기하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팔자에 없는 셀피 수십 장을 찍는 동안 생각했다. 있으나마나한 욕실 조명 아래서 찍은 사진을 여권 재발급 심사에 넣기 위해 나는 새벽 댓바람부터 용을 쓰고 있지만 한국은 오후의 여유가 한창일테니까. 합격 소식이 날아온 건 여섯 시 반이 지나서였다. 한숨 돌리고 나니 여기 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는 사실이 머리를 꽉 채웠다. 이 호텔의 하루 숙박료에 3을 곱한 숫자가 눈앞에 보였다. ‘이제 잃어버릴 여권도 없으니 편하게 즐겨볼까.’ 임시로 물 발라 빗어 넘긴 머리칼만 대강 털어내고 곧장 빠져나왔다. 그 지긋지긋한 호텔에서.
풀턴 스트리트에서 타임 스퀘어-42번가로. 그리고 지하철 역 출구를 열었을 때의 환희, 감정의 요동이 아홉 달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다. 도시에 잠긴 붉은빛이 문틈으로 스며들고 손등과 코트 소매 그리고 뺨을 차례로 물들이는 과정, 차가 뜸한 사거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42번가의 빛과 그 너머 태양을 담는 모습, 저 멀리 보인 마담 투쏘 간판의 멋들어진 글씨체와 짜증 섞인 택시의 빵빵거림까지. 프라하에서, 포르투와 모스크바에서 겪고 그 후로 신봉해 온 ‘첫 아침의 기적’ 그 자체였다. 쉿,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으니 나는 그때를 첫 번째 아침으로 기억할란다.
일곱 시면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건만 타임스퀘어는 이상할 정도로 한가했다. 빈 광장을 휘 둘러보는 동안, ‘WE ♥︎ NYC’ 조형물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관광객보다 NYPD가 더 많았으니. 그저 이른 시간이라 그렇겠거니 했다. 24시간 내내 북적이리란 건 일종의 환상 내지 과대평가였다고. 하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하지만 그 생각들은 십 분 후 와장창 깨졌다. 여명 걷힌 동쪽, 불과 한 블록 너머 6번가를 발 디딜 틈 없이 채운 인파를 보고. ‘아아, 오늘이었구나?’ 나뿐이었을 게다. 오늘이 11월 마지막 목요일, 추수감사절이란 것을 몰랐던 사람. 그저 이제야 제대로 맨해튼 구경할 생각에 헬렐레 걷던 사람. 어제도 했던 생각이지만 이틀간의 액땜 이후로 뉴욕에선 쭉 운이 좋았다. 북적이는 곳을 끔찍이 싫어하는 내 성향상 메이시스 퍼레이드에 몰린 인파를 봤다면 지레 포기를 했을 텐데 헬렐레하다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으니,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끝까지 참석했으니 말이다. 이후로도 이런 어영부영 뒤 행운, 난처하다 벅찼던 해프닝이 몇 번 더 있다.
퍼레이드 행렬을 위해 세워 놓은 철제 바리케이드를 따라 몇 겹으로 늘어선 인파.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당연히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한참을 전진할 수 있던 비결은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힘이었다. 포기가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힐끗대며 기회를 찾는 것. 승자들은 동트기 전부터 나온 모양인지 대부분 한겨울 패딩 점퍼 차림이었다. 양손에 도넛과 커피 들고 여유롭게 몸 녹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밤을 샜는지 혼이 나간 표정으로 캠핑 체어에 얹혀져 있었다. 아니, 이토록 노는 데 열정적이라니. 다행히도 이때 P의 행운이 한 번 더 발휘됐다. 눈앞에서 한 커플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며 균열을 만든 것. 나보다 훨씬 큰 거구가 그 틈 양쪽을 막고 있었지만 의문보다 행동이 빨랐다. 물론 그 앞으로도 대여섯 겹이 있었지만 안 밀리고 설 수 있는 게 어디인가. 후에 찾아보니 대각선으로 그 유명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이 보이는, 메이시스 홈페이지에 표시된 주요 관람 스폿 중 하나였으니 뒤늦게 간 것 치고 대단히 좋은 자리를 꿰찬 셈이다. 그때까지 라디오 시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던 내가 문제지.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멀리서부터 함성 불어오며 메이시스 땡스 기빙 데이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렸다. 어깨 맞댄 주변인들의 등쌀에 밀려 고개 드니 추수 감사절의 상징인 칠면조가 저 멀리 날개 파닥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진 큰 기대가 없었다. 거 미국 놈들 답게 크게도 만들었네, 하는 정도. 하지만 다음 타자인 거대한 스누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와우 씨, 소리를 질러 버렸다. 평소 스누피 팬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지. 지나가는 곳마다 그늘을 드리우는 크기도 크기지만 그 뒤로 보이는 6번가 빌딩들, 새파란 하늘이 장면을 더 환상적으로 보이게 한 탓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지니 나도 거기에 한 자락 얹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이후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지나갔고 나는 한껏 쳐든 고개로 화답했다. 몇몇은 불혹의 아저씨를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닌자 거북이가 그랬다. 그 옛날 볼록한 테레비로 만화를 보며 어쩜 저리 더러울까 생각했던 도시가 여기였다니! 조만간 정어리 피자를 먹어봐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간혹 유명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 흔들며 지나가기도 했다. 내가 알아본 사람은 넷플릭스 드라마 Beef의 앨리 웡 한 명뿐이었지만. 아,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아기 상어 가족들과 등장했을 땐 열심히 사진 찍던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더니 이렇게 물었다. “쟤들 BTS야?”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몰라.”
아홉 시 언저리에 시작된 퍼레이드는 두 시간 뒤 산타와 루돌프가 등장하며 마무리됐다. 꽃가루 뿌리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다음 놀거리로 안내하는 그 치밀함이란.
축제의 끝엔 늘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지난한 행군 그리고 잊고 있던 허기가 있다. 울렁거릴 정도로 뱃속이 요동치고 나서야 만 24시간 공복 상태라는 것을 자각했다. 여권 분실을 자책하느라 저녁을 거른 탓이다. 그 후의 동선과 생각들은 이전보다 희미하다. 한동안 뇌 대신 위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이겠지. 사진으로 추적해 보니 그 길로 지하철을 타고 레스토랑 JG 멜론을 찾아갔으나 헛걸음을 쳤다. 구글 맵에 설명돼 있지 않던 추수 감사절 휴무였다. 몇 장 뒤 사진 속엔 근처 아니 꽤 멀리 떨어진 에싸 베이글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의 뒷모습이 있다. 매장 안 사진이 찍힌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마침내 트로피마냥 자랑스레 빵봉지를 들고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그 집의 시그니처인 훈제 연어 샌드위치가 든 빵 봉지를 들고 센트럴 파크를 향해 걷는 길에서 기억은 이어진다. 손에 쥔 봉지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는 것에 초조해진 나머지 센트럴 파크 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 벤치에 주저앉았다. 우악스레 종이 포장을 찢어발기고 게걸스레 빵을 물어뜯었다. 80일 내내 버거를 먹고 다녔지만 뉴욕에서의 최고의 한 끼를 꼽으라면 그 샌드위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르르 녹으며 혀 아래로 사라지는 연어의 풍미, 양 어금니 언저리를 콕 찌른 짠맛을.
배 채우니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더듬더듬 시차를 계산해 보니 졸릴 때가 되기도 했다. 그새 저만치 도망가 버린 그늘을 따라갈 기운도 내기 싫어서 가만히 눈만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낮잠을 잤다. 땡볕은 핑계였겠지 아마. 여행 셋째 날은 아직 절반이 남았다. 근데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싶은.
그래 오늘은, 나 이럴 자격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