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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Aug 23. 2024

아니 잃어버릴 게 따로 있지

기대처럼 되진 않아. 근데 걱정 만큼은 아니기도 해.

하여간, 오자마자 덜렁대기는.

 처음엔 웃었다. 그게 어디 갔겄어, 어느 주머니엔가 있겠지. 우선 양쪽 코트 주머니부터 휘휘 저어 봤다. 얇은 옷자락이 힘 없이 펄럭일 뿐. 다음으로 왼쪽 속주머니에 손 찔러 넣으니 미끈한 안감이 손등을 간질인다. 기대 않던 촉감 탓일까 아니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까. 목 뒤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힘껏 구긴 미간, 윗니로 누른 아랫입술의 통증도.


거짓말.

진짜 없다니까?


 프린스 스트리트 역 플랫폼 구석에서 코트와 가방 주머니를 있는 대로 까 뒤집으며 푸드덕 거리는 꼴이 엉겁결에 지하에 갇힌 비둘기 같았을 게다. 아까부터 점퍼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은 거지?’ 별말 없이 고개를 꺾으며 미소 짓는 그에게서 내가 보였다. 몇 분 전까지 느긋하게 센트럴 파크 행 R 지하철을 기다리던. 지나서 얘기지만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알았다. 다른 곳도 아닌 뉴욕 소호의 인파 속에서 손바닥만 한 내 여권 지갑이 발견될 리가 없단 걸. 브로드웨이 대로변 아이스크림 뮤지엄과 발타자르 레스토랑 그리고 에임 레온 도르 매장이 있는 멀버리 스트리트까지. 왔던 길을 돌아가는 내내 눈은 땅바닥을 훑었고 눈에 띄는 쓰레기통들 하나하나 뒤지긴 했어도 그건 뭔가를 찾는 행동이라기보단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지갑을 꺼냈던 에일린 치즈케이크의 점원에게 혹 주황색 지갑을 본 적 있냐 물었지만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계산 뒤 코트 주머니에 지갑을 넣은 기억이 명확했기에.


하, 조졌네 이거.

 몇 분 전 그 장소에 돌아왔을 때 치즈 케이크 베어 물고 뉴요커 흉내 내던 입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머리는 의미 없는 추적을 반복했다. 그 매장 앞 웅덩이에서 폴짝 뛰었을 때 떨어졌나 아니 아까 여기 앉아 케이크 먹을 때 흘러내린 것 같다. 그제야 코트 주머니가 얕은 데다 입구가 사선으로 되어 있어 물건 떨어뜨리기 딱 좋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코트 맘에 들어, 브로.’라는 말로 날 으쓱하게 해 준 옷이 어쩜 그리 미워 보이던지.

여권하고 지갑은 따로 썼어야지. 아예 호텔에 두고 나오던가.

 그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도 여권은 아예 금고에 두고 편하게 다니는 쪽이었다. 국제 미아가 될 뻔한 날 전까지는. 때는 2016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의 일이다. 매일 다른 도시에 정박하는 크루즈 여행의 일정은 일찍 끝난다. 여섯 시면 뱃고동 울리며 다음 항구로 출발하기에 적어도 삼십 분 전까지는 모두가 승선해야 한다. 여기엔 어떤 예외도 기다려주는 일도 없다. 혹 늦었다면 다음 항구까지 기차나 택시, 히치하이킹을 해서라도 와야 한단다. 그날도 마르세유 시내에서 오후를 꽉 채워 놀고 시간 맞춰 돌아오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셔틀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나를 시내까지 그것도 무료로 데려다준 버스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임시 노선이라는 것을 안 건 다섯 시가 지나서였다. 눈에 띈 버스에 일단 올라타 기사에게 손짓 발짓 하며 물어봤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개의 피어 중 몇 번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이 와중에 버스가 언덕을 타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증폭되다 못해 터져 버렸다. ‘여권은 객실에 있고 수중엔 카드와 현금 이삼십 유로가 전부. 이걸로 국경 넘어 이탈리아 제노아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럴 땐 아무리 내 머리지만 이 T발놈을 어쩔까 싶다. 생각이 그렇게 넘어가려던 차에 버스 왼쪽 창문 너머로 거짓말처럼 항구 그리고 배가 보였다. 언덕 위라 3번 피어에 정박된 것도 볼 수 있었으니 그저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친절한 버스 기사가 육교 앞에 버스를 세웠고 내 생애 가장 빠른 속도로 항구를 향해 달렸다. 3500명이 탄 거대한 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왜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는지 궁금해하면서. 마침내 결국 드디어 내가 입구를 통과하자 입구에 서 있던 서너 명의 선원이 곧바로 문을 닫았다. 객실에서 확인한 바 양말에 구멍이 세 개나 날 정도의 질주였다. 이후로 늘 여권을 꼭 품에 지니고 다녔다.

사진만 봐도 숨이 차


나 그냥 집에 갈까.

여권 없이 귀국은 할 수 있고?


 따져보면 여권이야 재발급받으면 된다. 미국에서는 여권 분실이 다른 곳보다 골치 아픈 일이라곤 해도. 지갑에 있던 카드와 일이백 달러쯤 잊으면 그만이다. 여러모로 그날보단 상황이 낫다. 물론 이건 이제 와 하는 생각이지 그때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한 한탄, 지갑 간수 제대로 못한 스스로에 대한 짜증, 이따위 코트를 만든 놈들을 향한 서운함. 무엇보다 새벽 다섯 시에 잠 깨우고 이사까지 하게 만든 호텔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시차 적응도 못한 나를 한층 더 맹하게 만든, 이 모든 게 다 그놈들 탓이라고. 초점 없이 응시하는 거리 풍경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흘렀다. 추수 감사절을 하루 앞둔 수요일에 잠시나마 이토록 불행했던 건 소호 아니 맨해튼에서 어쩌면 나뿐이었을 지도.

 여행에서 T의 장점이라면 어찌 됐든 상황을 수긍하고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프린스 스트리트 역으로 갔다. R 지하철을 타고 5번가 애플 스토어에 도착했다. 혼란 중에 예약을 취소했던 탓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다행히 그 사이 영사관과 통화 연결이 됐다.


어디서 분실하셨는지 기억은 나세요?

이전에 여권 분실하신 적은요? 

언제 귀국하세요? 아, 급한 건 아니시네요?


 그의 마지막 말이 꼭 ‘별 일 아니네요.’처럼 들려서 묘하게 안심이 됐다. 이럴 때 이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늘 떠들기만 했지 절절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다. “심각한 일도 오빠한테 얘기하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좋아요.”였던가. 한때 날 따랐던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이후 수습도 수월했다. 애플 스토어 직원은 수리된 맥북을 찾을 때 신분증 대신 신용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메모를 남겨줬다. 서울에 있는 클라이언트들은 고맙게도 마감일 연기보다 내 안부에 신경을 써 줬다.

이렇게 오려던 건 아니었는데

 스토어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진 지 오래. 사이 기운이 났는지 좀 걷고 싶어서 컴컴한 센트럴 파크 대신 맞은편 밝은 길을 골랐다.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새해로 이어지는 긴 축제에 맞춰 단장한 5번가의 밤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달까. 화려하고 또 어지러웠다. 보석 장식으로 멋을 낸 루이뷔통, 티파니 빌딩이 눈을 사로잡더니 뒤이어 트럼프 타워 앞에선 트럼프 가면을 쓴 거한이 실제로 내 어깨를 움켜 잡았다. 빅토리아 시크릿 숍 앞에서는 작은 밴드의 공연이, 삭스 피프스 애비뉴 앞에선 홀리데이 라이트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까 말했지? 여행지에서 나는 너무 쉽게 행복해진다고.


 밤거리는 때로 서글프게 하고 때때로 어루만진다. 이스트 58번가부터 42번가까지. 쭉 뻗은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썩 아니 꽤나 괜찮아졌다. 또 어디엔가 정신이 빠져서 뭔가 또 떨어뜨렸나, 그래서 맘이 가벼운가, 하고 이따금 뒤 돌아봤을 정도로. 실제로 노트북 무게만큼 가벼워지긴 했어도 그게 다는 아니었을 게다. 길 따라 늘어선 조명들 사이로 걸어오는 사람들의 캣워크 같기도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한 움직임과 표정을 가만히 감상하다가 문득 그토록 열망했던 거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해 버린 나는 감격에 젖어 버렸다. 그리고 ‘언젠가’라는 말 붙여 상상했던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길에 대한 감상은 앞으로 두고두고 하게 될 것이다. 80일간 족히 800번은 왔다갔다 했으니.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돌계단에서 발견한 T의 또 다른 능력은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들을 찾는 데 능하다는 것. 아이폰보다는 여권을 잃어버린 게 낫다고, 여기는 미국이니 애플 페이로 다 될 거라고, 이제 당분간은 잃어버릴 여권이 없으니 편하게 다닐 수 있지 않느냐고, 오늘이 귀국 전날이면 어쩔 뻔했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럭키비키까진 아니라도 크게 나쁠 것 역시 없었다. 늘 뭔가 일어나고 또 벌어지는 이 도시라면 더욱. 그러는 중에도 기차역에선 사방에서 흘러나와 교차하고 또 어딘가로 스며드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천장 누수로 잠을 설친 새벽의 사건도 여권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했던 오후의 사고도 희석되는 기분이다. 그제야 고개 처들고 안도의 한숨 내쉬려다 천장에 새겨진 예쁜 천장화를 보고 그만 배시시 웃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한 번 더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온전히 행복해졌다. 하늘 위 가득 떠 있는 것들을 향해 환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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