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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Oct 18. 2024

온리 인 뉴욕

뉴욕이란 이름의 낭만

 2023년 마지막 날 있었던 일이다. 나는 타임 스퀘어의 새해맞이 이벤트에 입장하기 위해 아침 일곱 시부터 줄을 서 있었다. 앞서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얘기들 보아 알겠지만 뉴욕의 몇몇 연말 이벤트를 경험하며 ‘적당히 미리 가 볼까’ 하는 태도로는 부스러기 하나 못 얻어먹는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날만은 상식 이상으로 서두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 열 명 남짓 있었으니 새벽잠 설친 보상은 충분히 받은 셈이다. 이후가 고통스러웠던 게 문제지. 시간이 갈수록 나와 같은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고 이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생겼다. ‘이 줄이 볼 드롭(Ball drop) 줄인가요?’라는 질문을 백 번은 족히 받았을 게다.

 예상은 했지만 점심때가 지나고도 우리는 타임 스퀘어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몇몇은 이리저리 자세 바꿔가면서 버티고 더러는 진작 주저앉아 마냥 때를 기다릴 뿐. 기약 없는 기다림이 사람들을 살짝씩 돌게 만든 건지 아니면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비범한 사람들이 모인 건지 간간히 눈길 사로잡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어떤 것은 기이한 쪽에 가까웠는데 내 코 앞에서 벌어진 한 사내의 춤사위가 그랬다. 깡마른 몸을 휘적이며 행위 예술과 춤 사이의 몸짓을 선보였는데 그 시간이 장장 백여 분에 달했다. 동시에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잔뜩 찡그린 얼굴로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렸는데 처음엔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어떻게 보면 통화 중인 것도 같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맞다, 심심했다. 그의 입모양과 다리 놀림을 번갈아 보고 어깨와 뒤꿈치를 튕기는 비트까지 따라 춰 본 끝에 최종 결론을 내리려는 찰나, 오른쪽 길바닥에 퍼질러 앉은 그러니까 오전엔 내 뒤에 서 있던 여성이 허벅지를 툭 치는 게 아닌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깡마른 댄서를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온리 인 뉴욕 (Only in New York).”


 뉴욕에 있는 동안 자주,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열차 밖 퀴퀴한 플랫폼에서 열연 중인 밴드를 보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내게 어떤 신사가 그렇게 말했다. 타임스퀘어에서 그 유명한 네이키드 카우보이, 카우걸이 지나갈 때도 사람들이 같은 말을 했다. 지하철 안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를 잡아끌고 나온 할머니의 당부, 인생 최고의 버거라는 내 찬사에 대한 직원의 답이기도 했다. 직역하면 오직 뉴욕에만 있어,겠지만 겪어보니 “뉴욕이라 그래.”라고 듣는 게 이해가 쉽더라. 감동, 즐거움 혹 위험도 여기가 뉴욕이라 더 증폭 된다는 얘기. 경험상 상당수는 자조의 의미로 쓰였지만 말이다. 동명의 인스타그램 계정 혹은 태그를 검색하면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들을 보게 된다. 지하철 바닥에 커다란 구렁이가 기어 다니질 않나, 알라딘과 재스민 공주가 바퀴 달린 양탄자를 타고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질 않나.

 당연히 뉴욕에만 있는 것도, 뉴욕이라서 가능했던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 문장에 담긴 그들의 생활 방식,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감화됐다. 서울에서라면 이상한 사람이라며 피하거나 눈 흘리며 봤을 사내의 춤사위가, 플랫폼 사이사이를 뛰어넘는 스파이더맨의 아슬아슬한 슈퍼히어로 랜딩마저도 “뉴욕이라 그래” 한 마디로 낭만이 되니까. 뿐만 아니다. 더 좋았던 건 따로 있다. 그 장면들을 같이 본 또는 함께 탈출한 사람들의 말과 표정에 서린 온기다. 자리에 앉자마자 예쁜 잔에 담긴 샴페인이 테이블 위에 놓였던 미네타 태번에서의 일을 예로 들어 볼까.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활짝 웃으며 이것이 우리의 크리스마스 룰이란다. 한 소녀는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 옷자락을 붙잡더니 더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몇 블록 옆 고택으로 안내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직원은 내 모자를 보고 나를 뉴욕 메츠 팬으로 오해해 한참 동안 몇몇 전시실을 다니며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그들은 낯선 내게 따뜻한 인사, 조언 혹은 웃음거리를 쥐어 주고는 ‘이건 그저 네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받는 거야.’라고 말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할까. 정겨웠다 해야 하나. 한편으로 그 말이 곳곳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에 대한 비웃음으로도 쓰이겠지만 그것 역시 그들이 이 도시를 받아들이고 살아 나가는 방식 아니겠는가. 지난해 파리에 머물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낡고 더러운 데다 곳곳이 고장 난 채 돌아가는 도시를 그것마저 그들의 일부라 여기는 의연함. 아래에 떨어진 부스러기, 덧칠한 치유의 흔적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우아함 같은 것들.

 여행의 시작은 도시지만 종착점은 역시나 사람이다. 굳이 새 친구가 생긴다거나 가슴 흔드는 로맨스가 생기지 않더라도 몇 발짝 너머 그들의 얘기, 그들과 얽히고 엉긴 추억들을 길고 짧은 것 다 모아 매듭 묶은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내 뉴욕 여행도 마찬가지다. 영화감독인 아파트 주인과의 몇 줄 대화, 내 뉴욕 버거 책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에드워드와의 추억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사진 찍어 준 것이 연이 되어 요즘도 간간이 소식 찾아보는 모델 개 문파이(moon-pi)와 가수 아자더(Ajada Reigns) 그리고 카네기 홀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해나 작가는 내 자랑거리가 됐고. 그들이 없었다면 80일의 시간이 긴 출사 또는 도피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것 역시 뉴욕이라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뭇 뉴요커들이 지들 동네를 세상의 중심, 지구의 수도라도 되는 양 ‘더 시티’라 칭하는 건 영 재수 없다만.


 브루클린에 있는 아파트에 묵었던 여행 후반엔 종종 귀갓길에 집 앞 카페에 들렀다. 커피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 꺼진 가게 창문에 붙은 종이 속 문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뉴요커임을 자랑스러워하세요.’라던가 ‘뉴욕도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따위의 간지러운 문장들이 석 달쯤 뉴요커 흉내 내다 집 갈 때 가까워지니 왠지 뭉클하더라고. 꼴사납게 말이지. 그간 적지 않은 도시를 다녔지만 이렇게나 동네 이름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유리창에 비친 나도 뉴욕 메츠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할 말은 없다만. 이게 다 뉴욕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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