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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Oct 25. 2024

걷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아?

걸음 뿌려 수확한 거리 위 장면들

 동생은 해 지기 전부터 대문 밖에 나가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도 아빠지만 월급날엔 어김없이 그의 손에 걸려 있는 시장표 통닭 봉투를 오빠보다 먼저 낚아채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퇴근이 늦었다. 골목이 캄캄해진 후에도 좀처럼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때 되면 오시겠지,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엄마 말씀에 동생은 열만 세고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일곱, 여덟, 아홉, 아홉 반, 아홉 반의 반, 여어어얼. 다시 하나, 둘, 셋… 내복 차림으로 골목 끝만 오매불방 바라보는 동생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릴 때 즈음 저 멀리 검은 형체가 보였다. 조용하던 골목엔 흥얼흥얼 콧노래 그리고 종이봉투 구겨지는 소리가 나지막이 깔렸다. “아빠다!” 어깨 들썩이며 다가오는 검은 형체를 향해 동생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왼쪽 골목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상하다,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맞는데.” 입을 삐죽이면서도 동생은 골목길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라졌던 검은 형체가 골목에서 다시 나오더니 빠른 걸음으로 동생에게 다가왔다. 가로등 아래에서 양팔 활짝 펼친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확인한 동생은 달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물었다. “아빠, 아까 왜 그 골목에 들어갔어?” 아빠가 답했다. “부르던 노래가 좀 남아서. 마저 부르고 왔지.”


 어느 책이었는지, 그때가 몇 살 때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본 이 얘기를 무척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때는 아이의 눈으로, 이제는 아빠의 발로 수천 번은 훑고 또 밟았을 것이다. 그사이 끊임없이 각색되고 윤색돼 원본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됐다만. 가끔 진짜 내 동생한테 있었던 일이었나 싶을 때도 있다.

 아마 여유에 관한,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동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배웠던 것은 걷는 즐거움이다. 이 얼마나 멋진 어른의 일인가. 나도 맘먹은 대로 걸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행보에 그럴싸 한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다행히 둘 중 하나는 이룬 아니 이뤄진 것 같다. 거기서도 많게는 하루의 절반을 걸어 다녔으니까.

 그 얘기가 또 떠오른 걸 보니 많이 걷긴 했나 보다. 브루클린 브리지 앞 덤보(DUMBO)에서 출발해 남부 다이커 하이츠(Dyker Heights)로 가는 길이었다. 연말이면 마을 전체가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뒤덮이는 뉴욕의 시즌 랜드마크. 혹 어떤 매체에서 올해의 베스트로 추켜 세워주면 미국 전체 아니 전 세계로부터 유명세를 얻게 되는 터라 몇몇 집들은 매년 박물관 뺨칠 정도로 화려하고 창의적인 장식을 선보인단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친구 메이는 그곳을 뉴욕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의 특권이라고 했다. 그 말에 가슴이 요동쳐서 소중한 12월의 하루를 털었다. 구글맵에서 잰 거리는 6.8마일, 도보로 두 시간 반이 걸린단다. 평소에도 대여섯 시간은 너끈히 걸었으니 그리 긴 것도 아닌데 그날은 왜 그렇게 멀고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기억 속 2023년 12월 9일은 걷고 또 걸었던 장면뿐이다. 발바닥 아치 부근이 콕콕 쑤실 정도가 되자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걷는 건데?

그래, 걷는 게 멋진 일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걷기만 할 일이냐고.


 지난여름, 뉴욕행 에어프레미아 티켓을 끊고 난 뒤 한동안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뉴욕 딱지가 붙어 있었다. 삼청동 뮤지엄한미의 <DEAR FOLKS> 전시에는 윌리엄 클라인(Willam Klein)의 눈에 비친 1950년대 브로드웨이의 모습들이 걸려 있었다. 현대 사진의 도화선이자 스트리트 포토그래피(Street Photography)라는 장르를 개척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뛰다 뛰다 결국 눈동자까지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동경해 온 거리 사진들의 무대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새삼 어찌나 설레던지. 그간의 여행들이 이번 여행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생긴 것이다. 내 걸음 그리고 여행에 붙일 꽤나 그럴싸 한 핑계가. 80일간의 겨울 방학 첫 번째 숙제를 ‘원 없이 걷기’로 정했다. 열망했던 만큼 뉴욕의 거리들을 탐하고 멋지거나 절묘한 또는 공교로운 장면들을 내 시선으로 담아보기로 했다.

이렇게나 열심히 방학 숙제 한 적이 있었던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계획은 더 구체화됐다. 적어도 남부 맨해튼에선 안 가 본 골목이 없을 만큼 좁은 길까지 다녀 보기로 한 것. 시작은 서울의 두 배가 넘는 지하철 요금이 부담스러워서 한, 두 정거장 거리쯤 걸었던 가벼운 산책이었다. 게다가 늘 무언가가 일어나고 벌어지는 맨해튼에서 지하 땅굴에 있느라 멋진 거리의 작품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그 돈 아껴서 이따 밴 앤 제리스 아이스크림 한 통 먹는 게 행복이기도 했고.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먼 거리까지 걷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니 센트럴 파크 남쪽 맨해튼 전체를 걸어 다니는 지경이 됐더라. 그렇게 했어도 남부 맨해튼의 모든 골목을 다 가보진 못했다만 원 없이 걷자는 숙제는 어떤 방학 때보다 열심히 한 셈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발견하고 기록한 장면들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윌리엄 클라인과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들 속 그 도시에서 처음엔 나도 비슷한 작품들을 찍으려 애썼다. 하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그것들은 잊히고 늘 하던 방식대로 걷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첫 여행부터 나는 늘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와 대화하는 걸 즐겼다. 그마저 끝나면 머리 비우고 마냥 걷는 시간도 좋다. 돌아보면 뉴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거리 위에 펼쳐진 광경들에 함께 웃고 놀라기 위해. 길거리 음식 씹으며 언제가 될지 모를 놀라운 사건들 기다리는 즐거움에. 정말로 그것이 일어났을 때 셔터 누르는 손 끝의 짜릿함에 중독돼서 낯선 도시에 나를 던지고 던져진 나는 지칠 때까지, 때때로 목적지 없이 걸었다. 꼭 걷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처럼. 내 모습 대신 거리 위 장면들을 담기라도 하는 듯.

 아무리 그래도 목적지 없이 걷기만 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이날도 최종 목적지 다이커 하이츠로 향하는 길에 중간중간 몇 개의 기착지를 정했다. 점심시간 맞춰 도착한 레스토랑 레드 훅 태번(Red Hook Tavern)에서 호화로운 드라이 에이징 패티의 치즈 버거를 먹었다. 다이커 하이츠에 도착하기 전엔 이름부터 낭만적인 선셋 파크(Sunset park)에 들렀다. 크리스마스 마을이 메인이니 노을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걸음을 이어 가기 위한 휴식으로는 충분했다. 종종 목적지를 아예 지나쳐 버리기도 하는데 이날이 그랬다. 쭉 뻗은 길 끝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에 이끌려 다이커 하이츠 지나 베라자노 브리지(Verrazzano-Narrows Brg) 아래 쇼어 로드 파크(Shore road park and parkway)까지 걸었다. 짐작건대 그날 하루 중 가장 화려했을 해질 무렵 다이커 하이츠의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어떤 노래는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게 내가 그걸 부르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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