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올까요?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종일 그때를 기다렸는데 말이야. 일찌감치 가서 앞자리 하나 꿰찰 생각이었는데 하필 그날따라 노을이 근사하지 뭐야. 넋 놓고 보는 사이 아뿔싸 시간이 한참 지나 버렸어. 급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칠흑의 골목들을 걸었지. 마침내 마지막 코너를 돌았을 땐 마을엔 이미 축제가 한창이더라. 잠시 땅 위로 내려앉은 별들은 지붕과 난간, 계단에 앉아 더러는 나뭇가지와 난간에 매달려 꿈뻑 꿈뻑 빛나고 마당마다 온 세상 산타들 모여 순록, 눈사람, 병정들과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어. 그들의 빛이 내 뺨에 닿을 만큼 밝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어. 종일 걷느라 녹초가 돼서 그냥 힘없이 배시시 웃어버렸거든. 그 바보 같은 표정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했을 테니까. 게다가 까만 밤이라 그 치장들이 더 예뻐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부옇게 번지는 게 꼭 눈물 난 것 같았다니까. 조금만 더 일렀어도 그만큼 애틋하진 못했을 것 같아. 내 겨울방학 열아홉 번째 밤이.
브루클린 남쪽 끝에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다이커 하이츠(Dyker Heights)가 겨울이면 어지간한 맨해튼 시내보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하다지. 친구는 내가 뉴욕에 있다는 걸 듣고는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다이커 하이츠에 갈 수 있단 게 부럽다고 했어. 나는 다이커 하이츠가 뭐냐고 물었지. 친구는 색색의 전구를 두른 주택 사진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어. ‘내 꿈속에 있는 동화.’
예쁘고 귀여운 것, 사랑스러운 장면, 애틋한 이야기 그 외에 온갖 좋은 것들을 동화 같다고 하잖아. 나도 집집마다 화려하게 치장한 그 동네 걸으며 그 말 떠올렸으니까. 거기서 한동안은 그냥 신나서, 신기하고 즐거워서 구경하다가 왜 하필 동화일까 생각해 봤어. 아이들의 이야기를 동경하는 건 어른들뿐이니까. 진짜 애들에겐 동화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잖아. 역시나 그 얘기들 읽던 시절의 눈과 입술, 가슴이 그리운 거겠지.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냥 마냥 느끼고 또 내뱉을 수 있던 시절에 대한 향수겠지. 이제야 그 시절 동화 다시 읽어도 흐려진 시야, 탁한 목소리가 더 슬플 뿐이니 크리스마스 핑계로 간만에 다른 생각 제쳐 두고, 체면 내려놓고 좋은 티 팍팍 낼 수 있는 곳이 좋은 걸 거야. 이런 설명들을 ‘동화 같은’이란 형용사로 줄여 어른들끼리 쓰는 건가 봐. 만든 사람도, 보고 즐기는 사람도 어른인 다분히 어른의 동화라니. 재미있지 않아?
산타 얘기도 그래.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걸, 만에 하나 오더라도 그게 우리 동네일 확률이 0에 가깝단 걸 진작에 알면서도 때 되면 정말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노래 노래 부르잖아. 산타가 곧 우리 마을에 올 거라고. 그다음은 또 어때. 기다리다 기다리다 겨울 지날 때까지 소식이 없어도 누구도 서운해하기는커녕 다음 겨울 노래 부를 날을 또 기다리잖아. 우리가 기다리는 산타는 누구일까 또 그렇게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나는데 팝콘 트럭 안에 있던 어린아이가 나를 부르더라. “팝콘 있어요. 이게 뉴욕 최고의 팝콘이에요.” 생긋 웃는 아이 표정이 너무 예뻐서 나도 내 옆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다 걔를 따라 웃어 버렸어. 당연히 팝콘 몇 봉지가 순식간에 팔렸지. 나는 팝콘 먹을 힘은 없어서 주머니에 있던 몇 달러를 아빠 몰래 걔 손에 쥐어 주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했어. 그래야 할 것 같았어. 그러고 싶었어. 마을 나오는 길에는 아이 둘이 자동차 선루프에 몸을 내밀고 서서 사방에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를 외치더라고. 앙증맞은 손으로 입 주변에 고깔 만든 게 어찌나 예쁘던지. 물론 차 지나가는 길 따라 사람들의 화답도 이어졌지.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나는 그 웃음과 목소리가 꼭 산타의 것처럼 보이더라. 그러니 진짜 산타가 오지 않아도 괜찮은 거겠지.
언젠가 네가 겨울에 뉴욕에 간다면 나 역시 다이커 하이츠를 추천할 거야. 하룻밤을 동화 속에서 보낼 수 있단 걸 부러워하겠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그날의 동화를 함께 몇 장 더 보는 게 낫겠지.
벌써 11월이야, 산타가 곧 이 도시, 우리 동네에도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