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쇼를 보면서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by 양미숙

양손에 한우세트를 안고 와도 모자랄 판에 전날 숙취를 잔뜩 안고 찾아온 못난 딸을 보신 부모님은 혀를 차며 누가 저 아이를 저렇게 키운 것인지에 대해 잘못을 미루기 시작하셨고 결국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왜 싸우시는 거냐고 묻자 싸우는 게 아니라 대화 중이라는 믿기 힘든 말을 하셨다. 조금은 격한 대화를 중간에 경청하다 도저히 귀가 아파 티비 채널을 돌리려고 하자 엄마는 나훈아씨가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이해 두 시간이나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지금 수신료의 가치에 따라 방송될 예정이니 당장 리모컨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하셨고 아빠는 엄마의 말이 맞다고 장단을 맞췄다. 나는 부부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잠시 생각하며 리모컨을 내려놓았고 부모님은 나훈아씨가 나와서 첫 곡을 부를 때까지도 대화를 이어가셨다.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지 랩 배틀마냥 누가 더 서운하게 했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셨다. 누가 더 살림을 어렵게 했나, 누가 더 부모역할을 소홀히 했나, 누가 더 지병이 많은가, 누가 더 참았나 등등의 내용이었고 역시나 40년을 함께 산 부부답게 서로의 아픈 곳을 너무 잘 알고 아픈 데만 골라서 건드렸으며 이골이 났는지 아파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다 홍시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부모님은 대화를 잠시 멈추고 노래를 같이 들으셨다. 아빠가 저 노래는 정말 좋다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나훈아씨 노래는 모두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빠는 당신은 나 빼고 다 좋다고 하지라고 물으셨고 엄마는 당연스럽다는 듯 맞다고 대답했다.


뜬금없이 몇 해 전 가족들과 펜션에 놀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부모님은 한잔 거하게 하신 뒤 노래방 기계 앞에서 나훈아씨의 영영을 서로 마주 보며 부르셨다. 두 부부의 열창을 듣고 나는 서로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빠는 엄마의 첫사랑 상대 실명을 거론하며 그를 못 잊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당당히 어떻게 잊냐고 하셨고 그날 동생과 나는 먹던 술상을 재빨리 무르고 잠에 들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고 서로를 원망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같이 산 세월이 40년이다.


나훈아씨 공연을 한참 보던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이 올해 몇 살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일흔을 앞둔 본인의 나이를 밝혔고 아빠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대답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두분을 번갈아 보는데 아빠가 우리가 두 살 차이지 한 살 차이야? 엄마는 주민등록상에만 한 살 내려져있는 거야. 나 말띠거든? 이라며 별안간 나이 공방을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말띠가 당신 만나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라고 마침표를 찍었고 아빠도 물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마무리하셨다. 두 분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평화가 찾아왔고 나훈아씨는 하얗게 샌 머리로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대한 심경을 짧게 밝히고 노래를 이었다. 그리고 영영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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