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외로워하고 있다.

끝없이 외로워도 괜찮아

by 양미숙

억 속 외로움에 대해 2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때다.

새 학기가 훌렁 지나 교문부터 시작된 언덕길을 따라 핀

개나리들이 하나 둘 떠날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이렇게 날 정도니 너무 어리지는 않았고 나도 조금은 알고 조금 더 알고 싶은 나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익숙하게 집에 가는 길.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가던 단발머리 아이가 나에게 새침하게 물었다.


"야! 넌 왜 맨날 혼자가?"


달리 대답하지 않고 그냥 그 질문을 못 들은 척했던 것 같다. 문득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해졌기 때문에 어린 뇌를 굴려 합당한 답을 찾아내려 했가 실패던 것이다.


그 아이가 나를 이상하게 보며 질문하기 전까지는 혼자 교했다 하교 후 집에 가는 게 나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애초에 누구와 같이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또래들은 대부분 학교 주변 주택가로 흩어졌고 나는 시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냥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 혼자 왔다 수업이 끝나면 혼자 집에 가는 게 뭐가 이상할까?


그런데 그날 이후로 교실을 나서면서부터 혼자인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다른 친구들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다니기도 단짝처럼 꼭 붙어 조잘조잘 떠들면서 다니기도 하며 하교 때면 교실을 나서 계단을 내려갔고 현관에서 실내화를 벗어 신발주머니에 넣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하고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쉴 새 없이 웃고 떠들도 했다.


내 신발주머니는 항상 주인과 단둘이 집에 가면서 어린 주인이 신발을 구겨 신든 끈을 다 매지 않든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기다리다 강제로 들려져 흙 뭍은 엉덩이를 툭툭 털리는 게 일상이었다. 문득 내 빨간색 신발주머니가 미웠다. 그리고 싫었다. 집에 가면 새로 하나 사달라고 조를 셈이었다. 집에 가는 길 신발주머니를 차기도 하고 벽에 긁기도 하며 온갖 괴롭힘을 다 주며 집에 갔고 집에 오자마자 신발주머니를 바꿔야겠다는 말을 하고 신발주머니를 멀리 던져두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학교 다녀오자마자 인사도 없이 물건부터 집어던지는 태도를 크게 나무라시며 신발주머니를 툭툭 털어 신발장 위에 올려두셨다.


나는 그런 신발주머니를 흘겨봤다. 그리고 씩씩거렸다. 이게 외로움이고 갑자기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하다'와 함께 알게 됐다. 그런데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네 탓이야.

감성충만해지는 석양에 외로움을 떠올린다.

미숙했던 사람

내가 참 어리숙했고 이제 겨우 미숙해질 때쯤 만났던 그는 나와 같이 있어도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나오는 헛소리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가 오히려 그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했고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외로움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관계를 판단해보니 나의 외로움이 짙어지자 그는 더 이상 나와 같이 있어도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보고 싶단 말만 하고 함께 있는 것은 실행하지 않았다. 입만 나불거리는 사랑이 계속되는 어느 날 문득 같이 있어도 내가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꽂혀 몇 날을 며칠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에서 시작된 생각은 "그냥 아무리 사랑받아도 외로운 인간"에서 잠시 머물렀고 그가 외로운 인간이었구나로 다시 시작하더니 결국엔 외로움을 인정 못하는 나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고 나의 외로움을 이제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다. 외로움이 싫어 나를 내던지고 긁어대며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다 알기로 했다.


이건 네 탓이 아니야. 내 탓이야.

혼술도 이렇게나 이쁘다.

분명 외롭다.

남들은 쉽게 묻는데 나에게 쉽게 질문하지 못하는 것은


"외롭지 않아?"



왜 나는 이 질문을 받기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주말마다 왜 엄마 아빠가 살고 있는 집에 오지 않고 집에서 혼자 TV만 보는지 답답하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그냥 혼자도 좋다. 편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순간에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순간에 했다. 하지만 외로움이 익숙해지고 매일 느끼는 감정이 아니게 된 것뿐이지 분명 내 안에 외로움은 있었다. 생각해보니 혼자도 좋고 편하게 된 것은 외로움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가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삐죽하고 나와서는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괜찮다. 어차피 넌 없어지지 않잖아 라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았다.


외로움을 알고 아무리 던지고 긁어대며 더럽게 괴롭혔던 내 신발주머니는 해지고 뚫려 아예 못쓰게 돼버리고 나서야 나를 떠났다. 그래도 한번 알게 된 외로움은 떠나지 않았고 내가 해지고 뚫리고 쓸모없을 때가 되어도 그대로 남을 것이다. 이제 안다. 그래서 괜찮다.


그리고 누구의 탓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