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김치

나의 할머니 제발 영원해줘요.

by 양미숙

그해 여름 방학

뜨거운 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전북의 한 시골마을은 우리 할머니가 사셨던 곳이다. 나는 그곳을 제2의 집 삼아 방학이면 내려와 여름이고 겨울이고 지냈다.


어느 여름,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밑에 시원한 그늘이 있는 모정 앞 '전빵'이라 부르는 작은 구멍가게에 할머니와 함께 갔다. 그곳에는 찍어낸 듯 할머니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뽀글 머리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전빵 주인 할머니는 익숙한 듯 플라스틱 작은 접시에 김치를 내다 툭하니 테이블에 놨다. 그리고 잘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잡고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서너 병을 꺼내 놨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맥주병이 개봉되자마자 쭉 따른 할머니들은 건배도 하지 않았으면서 맥주 한잔을 단번에 들이켜고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드셨다. 트림 소리가 오고 가고 할머니들은 다시 맥주를 따라 마시기 시작했고 나는 일면식도 없던 할머니 무리의 한 손녀와 급하게 친구가 되어 동네 모정으로 달려 나갔다.


동네 모정에서 흙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모정 뒤 누군가 주인 없어 그냥 심은 것인지 모를 고추를 구경하기도 하고 느닷없이 열차가 지나가면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그늘 밑이 깜깜해질 때쯤 나는 아직인가 싶어 전빵을 다시 찾는다.


할머니들은 무엇이 그리 신이 나신지 구성진 노래를 떼창 하며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김치 국물이 뭍은 젓가락은 테이블에 흔적을 남기며 자신의 본분은 원래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노랫소리보다 더 크게 "할머니!!!" 하고 부른다. 그러면 할머니는

"오매 오매 내 강아지~ 배고픈가~ 이것만 먹고 가게" 하시며 앞에 앉은 할머니에게 마지막이라며 가득 따르라고 하시고는 받아 들어 맥주 한 잔을 들이켜시더니 툭 털고 일어나 내 손을 잡고는 할머니들과 쉬운 인사를 하고 전빵을 나섰다.


그리고 함께 걸어 집으로 가는 길.

"고랑이 있응께 위험하니 조심 혀라"

"밥 먹고 나서 숙제 혀라"

"옴마 보고잡냐?"

"공부 잘 혀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 돼라"


쉴 새 없 걱정 섞인 말들이 쏟아지고 나는 순하게 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멀리서 우리가 오는 모습을 보며 문 밖에서 모깃불을 지피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서로 아는 체도 않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 씻고 저녁을 먹은 뒤 일기를 썼다.


손녀는 그 날을 오늘의 일기처럼 써도 될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할머니는 기억이 나실까?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의 글씨체.

맥주와 김치

퇴근길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마음을 알아서 일부러 모른 체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미 다 슬퍼하고 아파한 뒤라 괜찮은 건지 태연하게 말했다.


"니 할머니 올해 몇이여~ 아흔이여 아흔. 아흔인 양반 인디 치매 오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

"그래도...."

"드시는 것도 다 잘 드시고 건강하시댜. 그러니 더 오래 사실 모양이시다"


삶이 너무 기울어 뇌에 그늘이 너무 많이 진 게 아닐까. 할머니의 삶도 이제 9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잠시 잊었던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떠올린 얼굴은 지금 현재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어렸던 그 여름날, 지금보다 더 젊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엄마, 우리 할머니 있잖아. 나는 할머니 생각하면 옛날 전빵에서 맥주 마시던 게 생각나"

"야, 니 할머니는 멋쟁이여. 하고 싶은 거는 다 하고 사셨는디 뭘~"

"할머니가 우리를 잊지는 않겠지?"

"아직은 기억한댜. 나도 너도"


여름날 일을 기억 못 하셔도 되니 손녀의 이름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치부책 뒤에 전화번호와 함께 적어둔 부르는 대로 받아 적은 내 이름을 그늘로 보내지 마시고. 뜨거워도 좋으니 볕 좋은 곳에 잘 보이게 두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맥주에 김치를 먹으며 잠시 울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