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적응하는 고군 분투기
‘서울은 예전의 서울이 아니야, 전쟁터야’
중학생 아들을 서울로 전학시킨 후 한 말이다.
여고시절과 대학교 시절을 보낸 서울은 제2의 고향이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 분홍빛 데이트하고 결혼해 두 아들까지 낳았으니 항상 그리운 곳이었다. 강원도 오지와 아프리카까지 살다오니 서울로 이사 오는 일이 굉장히 두려웠다. 두 아들이 중학생이니 더욱 그랬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집을 얻는 일부터 전쟁 치루 듯 했다. 학군이 좋은 지역에는 전셋집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집 구하러 서울 갔다가 몇 번을 허탕 치고 돌아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인터넷에서 검색한 부동산에 울먹이며 전화했다.
“저 전세 집하나 구해주세요. 개학 한 달 남았는데 빨리 구해야 해요.”
“하나 있는데 지금 바로 올 수 있으세요?”
“아! 전 지금 강원도에 있는데……. 잠시 만요. 저의 어머니 가시도록 할게요.”
연세 드신 어머니는 전철 한 정류장 거리에 있는 부동산으로 정신없이 달려가셨다. 절약이 몸에 배신 어머니는 그 급한 상황에 택시도 안 타고 걸어가셨다 한다. 계약은 간첩 접선하듯이 이루어졌다. 그동안에 벌써 다른 사람이 와서 계약하려고 했으나 내가 너무 간절하게 전화하고 나이 드신 분이 오신다고 하니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에게 집을 내주셨다.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전세금 500만 원을 깎았다. 부동산의 친절함과 어머니의 신속함으로 좋은 집을 구하게 되어 그렇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아들 둘 다 같은 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서울에 가면 ‘좋은 학원 찾아가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하면 학교에서 왕따 당 한다’고 선배 엄마들이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긴장되고 겁도 났다. 강북의 변두리인데 시댁에서 가깝고 맘에 드는 학교와 학원이 많은 곳이라 다행이었다.
아들들이 가게 된 학교는 다행히 약 70% 학생이 열심히 하는 면학 분위기 좋은 학교였다. 아무리 학교가 좋더라도 중1, 중2인 애들을 더 이상 엄마가 붙들고 공부시킬 때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하도록 놔둘 상황도 아니었다. 영어와 수학 학원을 보내기로 했다. 학원이 수도 없이 많아 도대체 어디를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학부모회의 때 가서 만난 어느 엄마에게 물었다.
“영어 학원은 어디가 좋아요? 수학은요?”
“학원이요? 그냥 집 근처 아무 데나 보내요." "저희 애는 학원 안다녀요.”
그 엄마는 나를 한번 힐끗 보고 웃었다. 한 곳에 살다 보면 어느 학원이 좋은 지 당연히 아는 사실이라 대충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집 근처 영어, 수학학원에 들어가서 어떤 책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 물었다. 저마다 좋은 책으로 최선을 다해서 가르친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신뢰가 가지 않고 맘에 들지 않았다. 애들이 벌써 중1, 중2라 여기저기 다녀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갈 만한 학원을 찾지 못하고 중간고사를 치렀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우리 학년 전체 1등 했어요. 그 친구 다니는 영어 학원 알아왔어요.”
“그래? 우리 바로 찾아가 보자.”
중간고사 성적이 나온 후 중2인 큰아들이 말하기에 두 아들 데리고 바로 그 학원에 찾아갔다. Listening, Reading, words 등 긴 시간 동안 반 배정을 위한 성적 테스트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무슨 입시 시험 보는 것처럼 떨렸다. 다행히 학교 성적이 비슷한 애들과 영어 수준이 비슷했다. 그래도 아이들 붙잡고 집에서 시름하며 가르친 보람이 있었다.
그 영어학원은 학교 교과 과정을 신경 쓰지 않고 토익, 토플만 가르쳐서 실력을 키워주는 어학원이었다. 교재를 한 아름 씩 받아왔다. 수업이 주 2회 하루에 4시간씩이라 했다. 방과 후에 가서 4시간을 하고 오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만 다녀와도 피곤한데 또 4시간 동안 공부를 하느냐, 우리 애들은 2시간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학원 측은 그냥 웃었다. 지나고 보니 그건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시골 아줌마의 외침이었다.
스파르타 식 영어공부가 시작되었다. 그 학원에서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공부하며 견뎌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숙제도 많았고 내용이 쉽지가 않았다. 외워야 할 단어도 많고, Listening 숙제도 어려웠다. 소음이 많은 길에서 흑인이 하는 일상 대화에 괄호 해놓고 단어를 채워 넣어야 했다. 온 식구가 같이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함께 머리 맞대고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 하나씩 붙잡고 영어 숙제 돌봐주고 체크해 주었다. 정말 독하게 시켰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는지 둘 다 중3 겨울방학 전에 수능과 고등학교 내신 수준의 영어 실력까지 끌어올리고 그 스파르타 식 영어 학원 공부를 끝마쳤다.
“수학학원 같은 반 애들이 너무 공부에 집중을 안 해요. 공부 안 하는 애들 반이에요.”
“그럴 리가. 학원 가서 왜 공부를 안 하니?”
영어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학원이어서 다행인데 수학이 문제였다. 수학 선행학습이 되어있지 않아 진도에 맞는 반에 가다 보니 반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실력은 늘지 않고 영어와 다르게 수학은 반을 치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수학은 중학교 내내 두 아들을 좀 힘들게 했다. 선행학습이 뭐 중요하냐고 하지만, 학원을 다니려면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줘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당시 특목고 보내는 게 큰 관심거리였는데 왜 다들 특목고(외고, 과학고)를 가려고 하는지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 면담을 할 때도 외국어와 과학을 전공할 게 아닌데 왜 특목고를 가려고 하는지 질문하기도 했다. 그 또한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질문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학원에서 주최하는 특목고 입시 설명회에 가서야 세상 물정, 서울 실정을 알아차렸다.
특목고 입시 설명회를 가면 특목고를 꼭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바심 나게 했다. 큰 아들을 특목고에 도전하게 할까 욕심을 내 보았지만 중2 때 서울 생활을 시작해 특목고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먼 나라 얘기였다. 시골에서 숙제와 문제집으로 방과 후 공부를 해 놓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닌 동안에 서울의 아이들은 그토록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서울에 와서 그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영어 학원 알아내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맘에 드는 영어 학원을 알아낸 게 아이들 공부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다 지난 다음에 더 절실하게 느꼈다.
‘학원에서 공부한 게 뭐 대단하다고 그러나’ 생각할 수 있다. 어떠한 방법으로 공부해도 상관없다. 누구나 어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집중해서 강하게 끌고 가야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영어, 수학과 논술의 실력을 쌓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굉장히 유익했다. 학원은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속도를 내어 끌고 가는 곳이었다. 스스로 혼자 하면 실력 쌓기도 쉽지 않지만, 지치고 힘들 때 쉬게 되고 강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지기 쉽다. 집에서 스스로 느슨하게 공부하던 두 아들에게는 학원이 많은 역할을 해 주었다.
아이들이 성공하는 데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좋은 학원 알아내는 게 정보라고도할 수 없지만 우리에겐 중요했고 맞는 학원 알아내기까지 힘들었다. 요즘은 정보가 차고 넘쳐서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좋은 정보를 골라내는 게 중요하다. 학부모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아이들을 리드해 주는 일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두 아들은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끌고 나갔던 영어학원에서 견디며 공부한 덕을 많이 보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유학할 때, 어려울 순간 견뎌내는 힘과 영어 실력 면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요즘 자녀교육을 위한 부모들의 노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속 이야기도 놀라운데 그 정도는 조족지혈이라는 걸 실감한다. 자녀교육에서 늘 변하지 않고 항상 중요한 것은 확실한 꿈을 갖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