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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어쩌다 유학' 이야기 1

폴란드 American School 아이들

by 여행작가 히랑

두 아들의 '어쩌다 유학' 이야기 1


몰랐다. 고등학생 아들을 그곳에 데려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학교에서 견뎌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재밌게 학교를 다녔으니 다행이다.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른다. 기회를 잡으려면 항상 준비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아빠의 직장 문제로 폴란드에 가게 되었다. 두 아들이 고2, 고3 되는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온 가족이 함께 갔다. 폴란드의 사는 여건은 굉장히 좋았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니 다 자란 나무를 옮겨 놓은 것처럼 걱정되기 시작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American School(ASW)이 크고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받아 줄지 불안했다. 다른 나라에서 종종 원하는 학년에 빈자리가 없거나 영어실력이 없어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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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외국에서 공부한 적 있어요?”
“아뇨……. 예……. 나이지리아에서 초등학교 2학년, 1년 동안......”
“중 · 고등학교 때는 해외에서 공부 안 했어요? 다 큰 애들을 어떻게 하려고……. 학교 수업은 거의 영어 에세이와 프레젠테이션으로 하니까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영어는 잘하겠죠? 어련히 알아서 데려 왔겠어요?”
“......”
남편의 동료 부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걱정을 해주었다.
몰랐다. 난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아주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우리 애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리라고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일단 두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찾아가서 면담을 했다. 아이들은 바로 그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는지 영어 어휘, 문법, 독해능력, 수학 등을 장장 4시간 동안 테스트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를 다니다 오는 경우 간단한 인터뷰로 끝나는데 우리 아들들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꼼꼼히 실력 체크를 했다. 기다리는 3일이 3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드디어 연락이 왔다.

“두 아들이 다 훌륭하군요. 나이에 맞는 학년, 11학년과 12학년(고2, 고3에 해당)에 시작해도 됩니다.”
“만일 큰 아들이 12학년으로 시작한다면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인데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
“저의 학교는 IB과정을 시행하고 있어서 11학년과 12학년, 2년간 하는 과정입니다. 12학년만 다녀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도 있고 11학년부터 공부해서 IB과정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 금발 선생님이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영어를 집에서만 공부하다가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스파르타 식으로 실력을 끌어올린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큰아들은 12학년(마지막 학년)만 공부하고는 어느 대학교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동생과 같은 학년으로 10학년 말부터 시작해 IB과정을 밟기로 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국제 수능) Diploma 란 다른 나라의 대학에 입학하고 자 할 때 학력을 인정해 주는 국제 인증 대학 입학 자격증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외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좀 더 쉽게 하고 국제적인 이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국제적인 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커리큘럼이다. IB 교육과정은 2년 코스로 공부와 공부 외 활동(extra curriculum)이 잘 접목된 좋은 교육과정이다. IB 시험에서 얻은 성적이 좋으면 대학에서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전인 교육이 목적인 IB 프로그램은 학업 외의 활동이나 사회 봉사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두 아들은 미국 학교의 생활은 4월 부활절 1주일 방학부터 시작했다. 10학년 말, 5월과 6월 중순 한 달 반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미국 고등학교가 어떤지 파악하는 아주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얼굴은 한국의 고등학교의 치열한 입시 전쟁에서 벗어나 봄꽃과 함께 환하게 피어났다.
6월 중순부터 8월 20일경까지 기나긴 여름방학 동안 영국 문화원에서 영어를, 스페인 문화원에서는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집에서는 책도 읽고 주변 공원에서 농구도 했다. 좀 바빴지만 마음은 편안한 여름 방학을 보냈다.

큰아들은 문과 성향이고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과학이 별로 어렵지 않아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잘해나갔다. Year Book(졸업앨범) 편집장도 하고, 영어토론에 관심이 많아 MUN(Model United Nations)에도 참가했다.
둘째 아들은 이과적 성향이 있어서인지 English 과목의 영어 시나 소설을 어려워했다. 사실 시나 소설이 한국어로도 쉬운 과목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하고 outdoor Club(학교 밖에서 운동이나 등산을 하는 활동) 활동을 좋아했다.
과외활동은 학교에서 활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 나라 국제학교 학생들과 경쟁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체코 프라하로 축구 시합이나 수학경시 대회도 다녀왔다. MUN도 참여해 프라하, 헤이그, 카이로 등에 가서 세계 여러 나라 학생들과 모의 유엔 회의를 하고 왔다.
시합이나 경연대회는 나라마다 번갈아 가면서 하고 출국할 때는 담당 선생님의 인솔 하에 가고 항공비만 지불하고 숙식은 주최하는 학교의 학생 들 집에서 무료로 홈스테이 한다.
IB과정에 따른 공부는 주입식이 아닌 수업 후 스스로 조사하고 깨달으며 에세이와 프레젠테이션 등을 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공부 외 활동은 모두 IB과정에 포함되므로 누구나 종류별로 구분된 종목을 선택해 활동한다. 그래서 대학입시를 준비한다고 공부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맞는 운동 및 특기 활동을 하게되고 모두 대학입시 지원시에 기록하고 추천서를 받아 첨부할 수 있다.
교재 사용제도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교제는 학교에서 학년별로 학생 수만큼 소유하고 있어서 자신의 학년과 과목에 맞는 교제는 빌려서 1년이나 반년 동안 사용하도록 했다. 매해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교제비 지출도 없애고, 자원절약 차원에서 굉장히 본받을 만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면 선생님으로부터 면담 요청이 오는데 우리 아들 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IB과정이 워낙 좋은 입시제도여서 학교에서 이끌고 가는 대로 그냥 맞춰서 열심히 하면 되었다.


형제가 같은 학년, 같은 과목을 들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스페인어로 설명하며 요리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서 제출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두 아들은 한 팀을 이루어했다. 시간이 없어 새벽 1-2시에 부엌에서 덜거덕거리며 실습을 했다. 친구와 한 팀으로 하면 바빠서 만나기 어려운데 한 밤중에도 할 수 있었다. 아주 훌륭했다고 스페인어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받았다.


‘큰 나무도 가느다란 가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10층의 탑도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처음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 <노자>’


몰랐다. 고등학생으로 폴란드 American School에서 공부하고 견뎌낸다는 게 그토록 힘들지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그들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한국 학생들 중에 더러 영어 에세이나 수학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럴 겨를도 없었다. 두 아들은 공부에 대해 상의도 하고 각각 다른 성향으로 잘하는 과목이 달라서 서로 도우면서 지냈다. 서로 경쟁하느라 티격태격하면서도 형제가 함께 있어서 서로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우리 앞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매사에 열심히 하고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아빠가 군인인 덕으로 아들들이 전학을 많이 다니면서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익숙했다. 중학생 때 서울에 상경해 스파르타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실력과 인내를 기른 것이 든든한 힘이 되었다. 미국 학교에서의 2년여의 생활은 한국 고등학교 공부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공부였지만 꾸준하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그들에게는 약이 되었다. 두 아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는 그들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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