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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아들

by 여행작가 히랑

이 시대의 아들


아들이 돌아왔다. 뉴욕에서 작은 회사에 다니며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던 큰아들은 얼굴이 퀭하고 바싹 마른 몰골로 나타났다. 미국에 있어야 할 아들이 갑자기 오니 당황스럽고 눈앞이 캄캄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비자 때문에 왔어요. 비자받고 다시 갈 거예요.’
큰 아들은 고등학교 때 IB과정으로 공부한 덕에 14학점을 인정받아 3년 반 만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가 있는 미시간 한 회사에서 취업제의가 들어왔지만 아들은 뉴욕에 있고 싶어 했다. 취직도 하고 로스쿨도 공부하기로 하고 뉴욕으로 갔다.
뉴욕에서 회사를 다녔지만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비자가 만료되어 갑자기 들어온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패션에 관련된 일을 해보겠다고 뉴욕 한복판에서 동분서주 한 모양이었다. 큰아들은 패션 일이 잘 맞고 재미있어서 로스쿨 공부는 시작도 안 했다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 했다. 금방 비자받아 다시 미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아들을 한국에 그냥 눌러앉도록 2박 3일을 설득했다. 드디어 아들은 한국에서 직장을 잡기로 했고 미국에 있는 짐은 친구가 챙겨서 보내 주기로 했다.


5년 만에 한국에 온 아들은 건강검진을 하니 상태가 다소 좋지 않았다. 잘 먹으며 며칠을 푹 쉬게 했다. 뉴욕에서 얼마나 배를 곯고 다녔는지 한국음식을 해주니 매번 과식하도록 정신없이 먹었다. 한국에서 취직하도록 붙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쉬는 동안 3, 4월 그때가 공채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성, LG 등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회사마다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특히 7년 정도를 유학하고 온 아들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영어로 먼저 썼다. 영어 자기소개서는 훌륭했지만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글은 매끄럽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책 해석해 놓은 것처럼 한국어 글이 어색했다. 아들은 고 2까지 한국 고등학교를 다니고 논술을 잘해서 한글은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바짝 긴장이 되었다. 아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매끄러운 문장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 공부한 게 그나마 좀 도움이 되었다. 삼성에 지원해 서류 합격하고 SSAT(삼성을 취직하기 위한 인 적성 검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글과 영어 중에 한글 SSAT를 선택해 3주를 공부했다. SSAT는 수능 보듯이 학교를 배정받아 모 중학교에 가서 오전 내내 시험을 치르고 나왔다.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다. 떨어진 한 가지 이유 중에 영어 싸트(GSAT)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싸트 문제가 한글이나 영어의 문제가 같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고 그래도 한글이 쉽지 않겠느냐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7년을 영어로 공부한 아들에게……. 알고 보니 한, 영 문제는 다르고 영어가 더 쉽다는 후문이다.


아들 취직을 준비하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니 한국의 대학입시처럼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다 보니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아이들은 초주검이 되어가는 듯했다. 한국에서 취직하려고 하니 한자능력시험, 토플 성적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외국에서 힘들게 공부한 것들은 취업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다시 한국의 틀에 짜 맞추어가야 했다. 가족회의를 하며 만일 아들이 회사에 취직한다고 해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아들에게 무엇이 최선인가?
아들은 유학생활 동안 외국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서 영어를 잘하고 IT,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책도 많이 읽어 박학다식하다. 힘들게 회사에 취직해 다니다 그만두는 것보다 시간 낭비하지 않고 빨리 아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 통역사를 생각해냈다. 마침 통번역대학원 설명회가 있었고 들어 보니 어학에 소질이 있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들에게 딱 좋은 직업이었다. 통역대학원을 가기 위한 전문 학원에 등록해 통번역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중에 영어는 문제가 안 되는데 한글 실력이 달려서 한글 공부를 훨씬 많이 해야 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공부라서 재미있게 했다.
아들은 낮엔 학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통역대학원 학원비를 마련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스스로 벌어서 하겠다고 했다. 아들은 통번역대학원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입학식에 학생대표로 선서도 하고 장학증서를 받는다고 해서 후리지아 꽃 한 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갔다. 대학원 입학식에도 오는 극성 엄마라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졸업식도 함께 진행되어서 학부모들이 꽤 많았다.
통역대학원 공부가 여간 벅찬 게 아니었다. 2년 동안 정신없이 공부했고, 수시로 통역사로 일도 했다. 그중 미국 가수 머라이어캐리 통역과 인천 아시안 게임 VVIP 통역을 하고 나서 뿌듯해하던 아들 표정이 생각난다.

당신이 하는 일이 삶의 대부분을 채우게 될 것이며,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는 유일한 길은 당신 스스로가 멋진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직 멋진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고 절대 안주하지 마라.
-스티브 잡스 2005 스탠퍼드대학 졸업연설 중-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스티브 잡스에 푹 빠져 지냈다. 그의 연설을 수도 없이 들었다. 특히 스탠퍼드대학 졸업연설은 수백 번을 들었다고 한다.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드디어 세종시 정부 기관에 통역사로 취직을 했다.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그동안 아들이 고생하며 공부하고 부모로서 신경 써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아들은 그의 일을 멋진 일이라고 믿고 그의 일을 사랑할 것이다. 경제를 전공했으니 통역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공부를 계속해서 더욱 성장할 포부를 가지고 있다.
아이 교육은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조건 사랑하고 모두 다 해결해주는 교육은 아이와 부모를 점점 힘들게 한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해결하고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 한다. 어떤 일에 부딪혀 버거워할 때 조언해주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동적 아이로 크는 것도 중요하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들 갈 길에 부모로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었다는 것도 뿌듯하다. 부모의 조언대로 잘 따르고, 아빠의 직장에 따라 많은 이동에도 열심히 해준 아들에게 감사하다. 유학생활, 뉴욕에서의 홀로서기 생활, 한국에서의 취직 준비기간 등이 아들이 살아가는데 모두 양념이 되어 줄 것이다.
아들~~ 너의 미래를 위한 여정에 행운만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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