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과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과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우리 난방시설인 보일러가 미국의 한 천재 건축가에 의해 개발되었다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도쿄의 데이고쿠 호텔 설계를 의뢰(1914년) 받아 일본에 갔을 때 추운 다다미방에서 떨다가 따뜻한 '한국의 방'으로 초대되어 온돌을 경험했다. 건축에 대한 열정과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라이트가 그냥 넘길 리가 없다. 온돌을 연구, 서양 난방 라디에이터의 방식을 적용해 온수 파이프를 고안해 냈고 우리나라는 그 방식을 들여와 현대식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독특한 매력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비난은 건축미가 전시 미술품의 아름다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순환하는 경사로와 함께 하늘로 솟는 볼륨을 보는 것은 지극히 감동적인 경험이다. 그 효과는 가시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오감을 만족시킨다. 건물은 살아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작, 이종인 옮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센트럴 파크에서 잠시 외출 나온 하얀 달팽이 같다. 둥글고 뱅글뱅글 감아 올라가는 나선형 모양의 미술관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보일러를 개발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이며 너무나 혁명적인 라이트의 설계도를 본 건축가와 예술가들은 엄청나게 반대했다. 그 자체가 너무 독특하고 예술적이어서 작품 감상을 방해하고 경사지고 둥근 벽에 어떻게 작품을 거느냐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들이 변경되었지만 라이트의 당당함과 굳은 신념 덕분에 지금의 나선형 모습은 유지되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올해(2019년) 라이트의 건축물 총 8개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미국 근대 건축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트는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세계 근대 건축가 3대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구겐하임 가문은 광산업으로 부자가 된 유대인 ‘마이어 구겐하임’(Meyer Guggenheim, 1828-1905)부터 시작된다. 그 아들 ‘벤자민(Benjamin) 구겐하임’(1865-1912)은 타이타닉 호 사고로 사망했고 그의 딸 ‘페기(Peggy) 구겐하임’(1898-1976)이 엄청난 유산을 받았다. 뉴욕 출신인 페기 구겐하임은 유럽으로 건너가 현대 미술 화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20세기 초 입체파, 초현실파 그림을 수집해 미국으로 가져왔다. 페기의 현대미술 사랑은 예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솔로몬(Solomon) R. 구겐하임(1861-1949)은 페기의 큰아버지이며 역시나 미술품 수집가로 페기와 자신의 수집품이 많아지자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고 뉴욕에 미술관 설립을 계획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의뢰해 추상주의, 비구상 작품들과 어울리는 독특한 미술관을 요구했다. 라이트는 그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건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동안 연구하고 추구해온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아 15년 동안 700장의 스케치를 했으며 라이트 사망 6개월 후에 완공(1959년)되었다.
달팽이 속으로 들어가듯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갔다. 중앙은 천정의 유리 돔까지 뻥 뚫려있고 층층이 뱅그르르 이어진 램프코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로 6층으로 올라간 후 그림을 감상하며 램프(ramp)를 따라 걸었다. 몬드리안·파울 클레·샤갈, 특히 칸딘스키의 추상화 작품들을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잔·드가·고갱·마네·피사로·르누아르·고흐 등 여느 미술관에서 많이 보았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과 피카소의 익숙한 작품들도 감상하는 재미를 준다.
근대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어머니는 임신 중에도 잡지에서 영국 대성당들의 목판화 그림을 잘라 사진틀에 넣고 보며 태어날 아들이 건축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서전에서, 이종인 역-
라이트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박람회장에서 프뢰벨 유치원 장난감을 구입하고 교육방법을 연수받아 라이트에게 블록 쌓는 법을 가르쳤다. 프뢰벨 블록 교육은 ‘원, 사각, 삼각형 등이 조화를 이루는 기하학적인 체계’의 이해와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피아노를 치게 하고 문학작품을 읽게 했다. 11살 때부터 외삼촌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자연과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4계절의 변화와 신비스러운 삶의 조화를 느꼈다. 이 모든 교육은 그의 삶과 건축세계에 큰 영감을 준다. 어릴 적 흔하게 접하는 장난감 놀이나 자라면서 하게 되는 힘든 고생 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모두 소중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라이트는 신뢰하지 않아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시카고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1856-1889) 밑에서 일했다. 설리번의 건축 철학을 잘 이해했고 주로 주택설계를 맡으며 자신의 건축 사상을 일찍이 확립했다. 전통 유럽 양식을 벗어나 다른 미국의 광활한 대평야와 잘 어우러지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유기적 건축을 꾸준히 연구하고 설계했다. 완만한 경사지붕, 평온한 스카이라인, 굴뚝, 깊은 처마, 낮은 테라스가 있는 프레리 양식이다. 이는 자연미와 평온함을 강조한 미국의 전통 주택 양식 자리 잡았고 유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빠른 건축 철학 정립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삶을 살았다. 6자녀 자녀를 둔 부인 외에 3명의 부인이 있었고,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과도한 소비 습관이 불러온 결과이다. 건축주의 부인이며 불륜으로 만난 두 번째 여인, 마마 체니(Mamah cheney)와 함께 살고 있던 탤리에신(Taliesin, 위스콘신)에서 비극적이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시카고에 출장 간 사이 흑인 남자 하인이 갑자기 미치광이로 돌변해 체니와 그녀의 아들 2명을 포함해 일곱 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탤리에신 주거 동은 절반만 남고 모두 전소되었고, 언론은 사건과 불륜에 대해 조롱하며 대서특필했다.
‘탤리에신은 계속 존재해야 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원상태로 복구해야 해. 이렇게 외로운 계곡에서 불에 그을린 끔찍한 폐허 상태로 내버려 줄 수 없어. 이제 과거를 회고하며 상심하거나 슬퍼하는 일은 없을 거야 과거에 탤리에신에 존재했던 아름다움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할 거야.'
-프랭크 라이트 로이드 자서전에서-
라이트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고 파괴되지 않은 작업실 옆 작은 침실에서 지내며 재기할 결심을 했다. 건축계에서 외면당하고 잊혀가는 상황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탤리에신을 복원해냈다. 재건된 집을 탤리에신 Ⅱ라 불렀고 자신의 상처도 함께 치유해갔다.
건축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 도쿄에 데이고쿠 호텔(Imperial Hotel)을 지어달라는 제안이 들어와 7년(1915-1922) 만에 완공했다. 호텔이 완공된 다음 해(1923)에 발생한 관동 대지진에서 호텔은 파괴되지 않았고 라이트 내진 설계는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라이트는 4번째 부인 올기반나의 지혜에 힘입어 자서전을 쓰고 탤리에신 Ⅱ에서 펠로우 쉽(Fellow Ship)을 운영하며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펠로우 쉽은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1년 동안 비용을 내고 라이트의 유기적 원리의 건축을 배우며, 시공, 숙식 해결, 예술 춤 등 다양한 학습으로 경험을 쌓는 제자 양성 시스템이다. 위스콘신의 추위를 피해 애리조나에 탤리에신 웨스트를 건축하고 겨울에는 모두 옮겨가서 펠로쉽을 진행했다.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라이트의 명성이 회복되면서 모두 은퇴할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949-1950년 사이에 600건이 넘는 의뢰를 받았고 그가 시행한 모든 일의 1/3 이상이 그의 말년 9년 동안 이뤄낸 일이다. 특히 라이트의 마지막 건축물인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낙수장(Fallingwater, 1939년)은 전통 건축 양식을 벗어나 새로운 건축세계를 보여준 20세기 위대한 걸작이다. 낙수장은 숲 속 경사가 가파른 계곡과 폭포 위에 지은 주택이며 돌, 물, 나무, 나뭇잎, 안개, 구름, 하늘과 조화를 이룬 유기적인 건축물의 정수이다.
“나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요.”
“책상 위로 물이 새면 책상을 옮기시오.”
이러한 오만한 발언을 서슴없이 할 만큼 라이트는 늘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쳤다. 실패하고 재난을 당할 때마다 삶과 사업을 다시 일으키던 그 힘과 불굴의 정신은 과히 가공할 만하다.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은 현대에도 추구하고 있는 건축 이념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건축 철학을 꿋꿋이 밀고 나가 유럽식 양식을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의 건축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정립시켰다.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믿음이 라이트를 거장으로 만들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설계된 후 완공되기까지 많은 논란과 변화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라이트의 강인한 정신이 미술관을 탄생하게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경사로를 따라 물 흐르듯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방을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서 너무 편리하다. 큰 작품은 천정에 균형 잘 맞추어 전시되어있어서 작품 간상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눈길을 중앙으로 돌려서 천정, 1층 로비와 건너편 층층이 보이는 램프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들은 이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 구겐하임 미술관: 매주 토요일 5:45-7:45 기부 입장(원하는 대로 내고 입장 가능)
△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건축물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뉴욕·1959), 낙수장(Falling water 펜실베이니아·1939), 프레드릭 C. 로비 하우스(시카고·1909), 쿤레이 저택(캘리포니아·1908), 탤리에신, 탈리어센 웨스트(애리조나·1936), 홀리혹 하우스, 유니티 교회 등 8개다.
*참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서전(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저, 이종인 옮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20세기 건축의 연금술사(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저, 이종인 옮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연을 품은 공간 디자이너(서수경 저, 살림지식총서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