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 숲길, 매일 걷고 싶은

제주 한달살이 7일차

by 여행작가 히랑

사려니숲길, 매일 걷고 싶은


쭉쭉 뻗은 키다리 삼나무가 마음을 찌른다. 그래 가자. 사려니숲으로…. 가서 온종일 걸어보자. 초록이 질리도록. 남조로 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쪽의 입구로 들어가 물찻오름에서 되돌아오면 10km. 반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게 맘에 안 들지만 주차된 차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경사가 완만하고 숲길 입구에 무장애 나눔길이 나무 테크로 되어 있어서 유모차, 휠체어도 쉽게 갈 수 있다. 기왕 종일 트레킹 하기로 맘먹었으니 나무 테크길 말고 멍석이 깔린 흙길을 골라 걸었다. 푹신푹신하고 젖은 곳은 물이 뽀록뽀록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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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의 ‘사려니’는 ‘신성한 숲’ 혹은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이다.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물찻오름과 사려니 오름을 거쳐 가는 숲길로 15km 정도이며 쭉쭉 빵빵 삼나무가 우거져 있다. 삼나무는 1930년대 심어져 수령 90년이 넘고 삼나무 유전자원 보존과 전시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때죽나무, 편백,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훼손되지 않은 청정숲길로 제주의 숨은 비경 31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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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가 가득 담긴 공기를 아랫배까지 깊숙이 끌어들이고 나쁜 독소를 길게 뱉어냈다. 등에 땀이 맺히고 온몸이 후끈해지지만, 공기는 시원하다.

나무 테크 길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트레킹 길이 시작된다. 화산 송이로 된 붉은 흙길도 있고 큰비가 올 때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곳곳에(특히 경사가 있는 곳) 콘크리트로 포장길도 있다.

콘크리트로 된 큰길 옆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흙길을 걷고 싶어 하는 트레킹족을 배려하는 맘이 느껴진다. 걷는 길에 가이드가 되어주는 삼나무 껍질의 이끼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오묘한 청록빛이다. 꼬불꼬불 오솔길을 지나 버석버석 소리 나는 붉은 송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숲 중간에 들어가 있다. 어디선가 노루가 나타나 풀을 뜯어먹고 있다.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서인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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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찻오름 입구까지 5.1km인데 계속 걸었다. 물찻오름은 현재 휴식년제로 전면 출입통제이며 1년에 한 번, 에코힐링행사 때만 들어갈 수 있다. 숲 깊숙한 곳에서는 뜸하게 사람들을 마주치므로 혼자 걷는다면 무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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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찻오름 입구를 지나 2km쯤에서 돌아갈 거리가 다시 7km라는 걸 인지…. 발길을 돌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려고 어찌나 빨리 걸었는지 다리가 마비될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전 6시에 겨우 숲을 나올 수 있었다. 끝까지 걷겠다고 조릿대 입구까지 갔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사려니숲길을 왕복 14km를 걷고 나니 다리는 굉장히 뻐근했지만 몇 년 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린 듯하다. 몸 여기저기 나타났던 이상한 증상들이 약간 사라졌다. 너무 섣부른 판단인 것 같지만 정말 건강해졌다. 언젠가 몸이 많이 약해진 날이 오면 사려니숲길 근처에 살면서 매일 걸으면 건강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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