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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히랑 Feb 01. 2024

아를 노란 집, 고흐가 행복하기도, 아프기도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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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노란 집, 고흐가 행복하기도, 아프기도 했던


 이쯤에서 고흐 이야기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고흐가 태어나기 1년 전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형이 사망해 집 앞에 묘지가 있다. 고흐는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도 중퇴한다.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구필 화랑에 취직해 헤이그, 영국과 파리에서 근무했다. 구필화랑에서 근무하며 종교에 빠져 종교에 관한 책만 보다가 해고당한다. 고흐는 목사를 준비했으나 계속 떨어져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촌 선교사로 간다. 결국, 선교사도 해고당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에게도 외면당하고 부모 집으로 돌아와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사촌 매형 안톤모브에게 배우다 결별하고, 안트 페르펜 미술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한다.

 고흐는 파리에서 화상을 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무작정 간다. 1886년 3월, 당시 재건된 파리는 고흐에게 과거의 파리가 아니었다. 인상파 화가들, 조르주 쇠라 폴 시냑, 폴고갱 등과 어울리고 미술관 관람도 함께하며 화가로서 많이 배우고 엄청나게 변화한다. 파리에서 만나 화가들은 감자 먹는 사람들과 탄광 노동자들을 그린 색감이 칙칙한 작품을 미치광이가 그린 그림이라고 무시했다.

 고흐는 그림 스타일을 확 바꾼다.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색이 화사해지고 재건된 파리의 풍광을 그린다. 파리에서 화가들과의 경쟁도 힘들고 알코올중독과 매독으로 지쳐 2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아를로 내려간다. 아를에 간 고흐는 남프랑스의 반짝이는 빛과 따스함에 행복해하며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고흐 노란 집을 보며

‘노란 집’ 은 아를에서 고흐가 살던 집을 그린 작품이다. 고흐와 고갱이 2달 동안 함께 거주했다. 고흐는 노란 집에서 굉장히 행복했고 가장 불행하기도 했다. 아를에서 화가공동체를 결성해 많은 화가와 작품활동을 하고 싶어 파리에 있는 화가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낸다. 아무도 답을 해오지 않아 동생 테오에게 고갱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흐는 고갱의 작품들이 맘에 들었고 촌스러운 자신에 비해 세련돼 보이는 고갱과 함께하고 싶었다. 주식중계인 하다 빈털터리 된 고갱에게 테오는 아를에서 생활하는 동안 생활비도 주고 그림도 사주겠다고 제안했고, 고갱이 고흐에게 가겠다고 한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고갱)                                                                    


 고갱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고흐는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처럼 들떠 해바라기가 풍성한 그림을 그려 노란 집 벽이 걸고 자화상도 서로 그려 교환한다. 고흐는 고갱과 같은 모델을 그리며 토론하고, 고갱은 고흐에게 있는 그대로 그리지 말고 그림에 생각을 담아보라고 조언한다.

 고흐는 계속 함께 지내고 싶어 정성을 다하지만 고갱은 경제적 도움을 받을 생각뿐이고, 자의식이 강한 두 화가는 자주 다투게 된다. 함께 생활한 지 2달쯤 됐을 때 고갱이 그려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에 고흐가 화를 냈고 고갱은 떠나버린다. 고흐는 발작을 일으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이 2주 동안 입원한다. 병원에서 나온 고흐를 아를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떠나 달라고 민원이 빗발친다.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에 있는 생폴 요양원에 입원한다. 요양원에 1년 동안 머물며 별이 빛나는 밤 등 많은 걸작이 탄생한다.     

고흐가 살았던 노란집 자리

 노란 집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비슷하게 지어져 누군가 거주 중이다. 외관이 노란색은 아니지만 그나마 모습이 비슷해 좋다. 고흐가 그릴 당시 집은 노란색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고흐가 노란색을 워낙 좋아해 노랑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에스파스 반 고흐와 반 고흐 아를 재단

에스파스 반 고흐(고흐가 귀를 자른 후 입원한 병원)

에스파스 반고흐(l'Eapace van Gogh)는 고흐가 귀를 자르고 들어갔던 정신병원이었던 곳이다. 현재는 고흐와 관련된 종합문화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시관, 도서관 등이 있다. 고흐 작품 <아를 요양원의 정원, 1889>의 모습을 토대로 고흐가 치료받던 당시의 병원과 정원을 복원해 놓아 익숙한 곳처럼 정감이 간다. 정원의 화초와 노란 아치 기둥이 눈에 띈다. 고흐 그림대로 각을 잡아 사진을 찍어보니 재밌다. 정원을 걸어보고 고흐에 관한 수많은 엽서 구경하며 고흐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걸 느낀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 재단

빈센트 반 고흐 아를재단(Foundation Vincent Van Gogh Arles)은 반 고흐에게 헌정된 문화 공간으로 작품과 유산을 전담하고 있다. 재단에서 수집한 고흐의 작품과 고흐를 기리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할 때 미술 전공한다고 했더니 10유로 정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고흐의 작품과 현대 작가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어서 재밌다. 옥상에 올라가면 오래된 아를 집들의 지붕을 볼 수 있다.           

고흐를 따라 여행하도록 고흐 모습이 길에 새겨져 있다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고흐를 생각하면 측은한 맘이 든다. 그러한 점 때문에 세계인이 고흐에서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고갱이 고흐와 2달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고흐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고흐의 걸작들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고흐를 따라가는 여행이 흥미진진하다. 고흐가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어서 현장감이 있고 좋다. 이제 생레미 생폴 요양원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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