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조인트와 맥도널드 CEO ‘레이 크록’
버거 조인트,
버거 조인트와 맥도널드 CEO ‘레이 크록’
호텔 안 햄버거를 찾아라.
‘햄버거 가게가 도대체 어디 있지?’
호텔 로비에서 한 바퀴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눈치 빠른 직원은 물어보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한쪽 구석에 햄버거 모형의 불이 반짝인다. 빨간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먼저 환영한다.
뉴욕의 3대 햄버거 중의 하나인 ‘버거 조인트’(Burger Joint)는 Le Parker Merdian 호텔 안에 있다. 사진이 잘 안 나올 정도로 어둡고 누런 벽에 사진과 낙서가 가득해 호텔 안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분위기다. 누런 전지에 초록 빨강 손 글씨로 메뉴와 주문하는 순서가 쓰여 있다. 주문 후 이름을 알려준다.
햄버거가 준비되니 이름을 부른다. 정겨움이 느껴진다. 소고기 두꺼운 패티는 고기 결이 살아있고 따끈하고 고소한 육즙이 입안에 흠뻑 고인다. 무엇보다 짜지 않으며 야채는 아삭아삭하고 음료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느끼하지 않다. 고기 굽는 정도(rare, mideum, welden)와 토핑은 고객이 선택한 대로 만들어준 정성스러운 햄버거이다.
햄버거를 먹을 때면 늘 최초 해외여행 때(1990대 초) 먹었던 맥도날드 햄버거가 떠오른다. 낯설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힘들 때 만난 맥도날드에서 편안하게 안심하고 배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햄버거는 간편해서 바쁠 때나 이동 중에 먹을 수 있어 편리하다. 이동이 많은 유목민 몽골인이 말안장 밑에 고기를 넣고 다니다 부드러워지면 간편하게 끼니를 대신한대서 유래한다. 그건 러시아와 독일 함부르크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된다. 미국의 햄버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요리사가 손님들의 음식 재촉을 견디다 못해 번스(Buns, 둥근 빵)에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끼워 만든 요리를 팔면서 시작된다. 1954년 레이 크록(Ray Kroc, 1902-1984)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프랜차이즈화하고 세계 어디서나 같은 맛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된다.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의 맥도날드 형제(Dick and Mac McDonald)가 쓰는 것과 똑같은 믹서를 사고 싶소.” 믹서기 외판원인 레이 크록은 멀티 믹서를 주문하는 전국 각지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문에 굉장히 호기심을 갖는다.
‘맥도날드 형제가 누구이며 왜 모두 그들의 믹서에 열광을 하는 걸까?
직접 한번 가보자.
너무 놀랍다! 150불이나 하는 믹서를 8대나 가동하다니…….
더구나 사막 한가운데 샌버너디노(San Bernadino)에서…….’
식당 앞에 긴 줄이 있다. 일단 합류해 기다리다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30초 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준다. 이럴 수가! 메뉴는 간단하고 매장은 파리 한 마리 없이 깨끗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군무를 추듯이 각자 맡은 파트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바로 고객 손에 쥐어준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와 함께 식사하면서 획기적인 주방 시스템과 햄버거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크록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핸리 포드 자동차 생산처럼 분업화되고 신속한 조리, 손님이 줄 서서 기다려 직접 받아가는 방식, 황금빛 아치와 맥도널드’라는 이름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믹서를 팔면서 전국을 다녔는데 이만큼 획기적이고 가능성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매장을 몇 개 더 열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지금 현재로 만족하고 평화롭고 좋아요. 누가 우리 대신 새 매장을 열겠습니까? 품질 유지도 어렵고요.”
“내가 하겠습니다.”
맥도날드 형제는 거절했지만 난 꿀에 붙은 개미처럼 바로 빨아들일 준비를 했다.
(‘성공은 쓰레기 통 속에 있다’ 중에서 -레이 크록 자서전……, 영화 ‘파운더’(The Founder)에서)
레이 크록은 맥도널드 형제를 설득해 1954년에 프랜차이즈 화하기로 계약하고 일리노이 주 데 플레인즈(Des Plaines)에 첫 가게를 오픈한다. 신속하고 저렴하며 맛까지 좋은 맥도날드 햄버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급속도로 성장해 5년 만에 200개의 체인점이 생겨난다. 햄버거 판매 외에 부동산 회사를 세워 맥도날드 점포의 토지를 소유해 임대수익을 올리는 경영방식을 통해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간다.
레이 크록은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일은 인생이라는 햄버거 안에 든 고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릴 적부터 기회만 생기면 일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어린 나이를 속이고 적십자 구급차 운전병으로 입대해 월트 디즈니와 함께 군 생활을 했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세일즈와 피아노 연주를 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종이컵 방문 판매가 천직이라 생각하며 능력 발휘를 하고 밀크쉐이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멀티 믹서기 판매권을 얻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멀티 믹서 방문 판매를 하던 중 맥도날드 형제를 만난 것이다.
‘맥도날드의 출발은 가족이지 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맥도날드 형제와 자주 의견 충돌이 있자 크록은 1961년 270만 달러에 지분을 모두 사버리고 ‘맥도날드’ CEO가 된다. 일관된 높은 품질과 균일하게 조리하는 레스토랑을 구축해서 과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경쟁 업체의 운영 비밀을 알아내고 싶으면 그들의 쓰레기통을 뒤지면 된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그 안에 들어있다.’ 레이 크록은 새벽 2시에 경쟁사의 쓰레기통 뒤지는 일도 서슴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성공을 향해 달린다. 52세,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 성공한 데는 그동안 몇십 년을 고생하며 살아온 경험도 든든한 바탕이 되어준다.
햄버거는 간편하게 식사하고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어서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맥도날드는 미국 프랜차이즈 초석이 되고 현재 120개 이상의 나라에 매장이 30.000여 개 운영되고 하루에 전 세계 5,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다.
맥도널드의 성공은 전 세계의 외식업뿐만 아니라 개개인과 산업 전반까지 파고들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조지 리처(George Ritzer, 사회학자, 1940~)는 그의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널드 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맥도널드 화’라고 표현했다.
맥도널드 화된 시스템으로 효율성, 계산 예측가능성과 통제 등 사회 전반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온 반면 많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기계화되어가고 지구의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신속함에 익숙해 참을성이 없어지고 창의성이 결여되어 개성이 없어져간다. 입맛은 비슷해졌으며 패스트푸드로 인해 건강까지 위협받는다.
우리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맥도날드 화된 시스템의 장점을 밀어내기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인간적이며 자연주의적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유행과 대세를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개성을 존중해주고, 되도록 걸어 다니고 채식과 슬로푸드를 먹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버거 조인트의 노란 전지에 쓰인 메뉴판을 본 순간 과거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패티의 익힘 정도와 토핑을 선택하면서 이미 앓고 있는 결정 장애로 토핑 모두를 선택하는 ‘The works’를 외칠지라도 잠시 한숨을 돌려본다. 이름을 부르면 햄버거를 받아서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먹고 벽에 붙은 글씨나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도 맥도날드 화의 단점을 이겨내는 작은 노력이다.
*참조: 영화 'The Founder'(존 리 핸콕, 2016년),
성공은 쓰레기 통 속에 있다. (레이 크록 자서전, 황소북스, 2011년)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 화(조지 리처, 풀빛, 1993년)
* Franchise: 본사가 가맹점에게 상표와 경영 노하우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형태.
* 메르디앙 호텔 위치(버거 조인트) Burger Joint: w56st 6 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