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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Jul 24. 2022

닭봉과 고갈비가 지나간 자리

오븐이 고장 났어요.

오븐이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한 지 몇 달이 되었다. 

평소 요리를 잘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븐은 자주 사용하는 편이었다.

아이들 간식용 빵과 좋아하는 닭봉 구이 정도는 곧잘 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고 쉽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븐이 고장이 나서 냉동피자를 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론 냉동피자를 사서 사등분해서

에어플라이어로 데워서 먹었다.  그리고 예전에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쓰지 못했던 간단한 요리들을 해 먹을 수 있어서 오븐이 고장 나고 몇 달이 지나도 견딜 수 있었다.

단지 오븐을 꼭 써야 하는 식단은 제외하고 말이다.


일요일 저녁 닭봉 구이를 해 먹기 위해서 남편이 닭봉을 사 와서 숯불에 굽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늦은 오후에 뒷마당에 불을 피우고 양념한 닭봉을 올리니 냄새만 맡아도 먹는 기분이었다.

호주의 겨울 추위가 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피부로 느끼는 느낌은 춥다. 특히 해가진 밤기온은 차다. 


머리는 차지만 불 옆에 바짝 땡겨앉아 손과 발은 너무 따뜻했다. 겨울의 이 느낌을 나는 너무도 좋아한다.

닭봉을 먼저 한팩 구워서 가족들이랑 나눠 먹었다. 냄새보다 맛은 더 꿀맛이었다.

닭봉을 굽고 난 불이 아까워 냉장고에서 찾은  고등어를 잔잔한 불에 올렸다. 고구마를 찾아봤지만 없어서 감자라도 포일에 싸서 숯불에 넣어주었다.

고갈비는 양이 많지 않아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주고 한참이 지나서 잊었던 감자를 꺼내보았다.

기대도 안 했지만,  포일에서 벗긴 감자는 16시간 금식하는 나에게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결국 평소보다 두 시간이 더 뒤인 9시에 감자를 먹었다. 

아.. 이 맛은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 맛이었다.

내일 첫끼를 1시에 먹어도 아깝지 않은 감자의 맛이었다.


이 맛은 아마도 순수 감자 맛이 아니라 닭봉과 고갈비가 스치고 지나가서 만들어진 맛인 게 분명하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닭봉, 고갈비도 아닌
감. 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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