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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Mar 12. 2022

깜장 비닐봉지

잠자고 있는 블랙스완  Black swan

평일 오후 4시 산책길이었다. 오늘따라 날씨도 너무 덥다. 가을이 올 때가 되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식지 않는다. 그래도 산책로는 이사 간이 되면 좀 시원해지니 걸을만하다.  이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아들 과외가 이 근처라 1시간 과외 보내고 난 그 시간 산책을 한다. 낮 기온이 38도라 산책을 할까 그냥 에어컨 나오는 쇼핑센터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때 아님 언제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모자 눌러쓰고 산책을 했다.  더워서 그런지 오늘 산책로에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나무 그늘 쪽을 찾아서 산책하다가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지나면서 물가 쪽에 있는 검정 물체가 보였다.

마치 예전에 내가 한국 살 때 동네 시장에 가면 담아주던 사이즈의 깜장 비닐봉지 같아 보였다. 멀리서 이상하다 왜 물가에 깜장 비닐봉지가 있지. 이상하다. 무슨 일일까 하고 달려가서 자세히 보기로 했다.

쓰레기가 강가에 있을 리가 당연히 없지라고 생각했지만 마치 깜장 비닐봉지처럼 보여서 다가갔더니

블랙스완들이 자고 있는 게 아닌가? 가까이서 잠자는 블랙스완을 저렇게 많이 보니 좀 징그러웠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내가 살고 있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의 새이다.




부리가 빨간색이 포인트이다. 그런데 그 부리를 감추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블랙스완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저 블랙스완이 다리가 하나인 것들이 많았다. 나는 잘 때 이 아이들이 한 발을 깃털 뒤로 올리고 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물에 동동 떠다니는 모습은 많이 봤어도 저렇게 강 끝에서 한 다리로 서서 얼굴을 뒤로 돌려 부리를 숨기고 자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매우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어떻게 잠을 잘 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진정 나만 몰랐던 것일까?   그들은 한 다리로 비틀거림 없이 균형을 잘 잡고 자고 있었다.  마치 요가하는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자는 것이다. 한쪽 다리를 어디에 숨겨두는지 다가가 보니  다리를 몸 옆에 딱 붙이고 자는 게 아닌가. 검은색이라 잘 안보이더니 가까이 가서 보니 보였다.



블랙스완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동동 떠있을 때가  편안하게 보였는데  그들에게는 내가 볼 때 매우 불편한 모습으로 자는 것에 제일 편했을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또 배우는 시간이다. 물 위에 떠있을 때는 힘차게 발길질하느라 무진장 피곤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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