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의 일이다.
멀고 먼 산타모니카에서 편지가 왔었다. 산타모니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 외국에서 온 편지-하며 좋아했었다. 또박또박 글씨가 써진 봉투에 우표가 달려온 편지. 편지 속에는 편지지 두장과 작은 은화 하나와 사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막 대학생이 되어 알게 되었던 D. D는 온화한 성품에 비해 겉으로는 꽤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 D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꽤 있었지만, D는 아무와도 사귀지 않았다. 모두들 D가 눈이 높다느니, 알고 보니 여자를 좋아한다느니, 내가 한 번 사귀어봤더니 등 말을 만들어댔지만 내가 보는 D는 그저 겁이 많아 아무도 사귀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D가 유학 가서 만난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겁쟁이 D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D는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게 되었다. 수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한 D에게 D의 부모가 꽤 심하게 반대를 했는데, 예상대로라면 D는 그 연애를 포기했을 테지만 놀랍게도 그 남자와 미국으로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다. 평소의 D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편지가 왔다. 그곳에서 결혼을 했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에게 도망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은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남자도 이 아이도 지키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지켜 내고 있는 자신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있으며 그 모든 생활들이 새롭고 행복하다고 했다.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며 있는 사진 중에 추려 보냈다고 했다.
사진 속 D는 그 느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유의 차가움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
사랑의 힘인가-
나는 편지와 사진을 보며 그렇게 혼잣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서랍을 뒤져 안 쓰던 디지털카메라를 손질 해 D에게 보냈다. 새 카메라는 아니지만 D의 용기의 원천을 기록하기엔 충분하지 싶었다.
사랑의 도주를 한 D의 소식은 그 후 몇 년간 이어지다 끊겼지만 D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사랑의 도주를 했다는 자체보다, 남들에게 겁쟁이인 걸 들키는 것도 겁내던 겁쟁이가, 온실의 화초로 온화한 삶을 살던 사람이 그렇게나 인생을 흔들어 버릴 용기를 냈다는 사실로 말이다. 그건 사실 몹시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