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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ug 26. 2021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동네가 그리워

1. 다리가 약해서 다리 힘 세지라고 일부러 멀리도 유치원을 보냈던 독한 엄마. 어른이 된 지금의 걸음으로도 30여분이 걸리는데요 어머니. 그러나 덕분에 다리 힘이 좋아졌던 것인지 산 꼭대기에 있던 초등학교는 참 잘도 오르락내리락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숲을 끼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중에 산을 등지고 있다고 해도 숲을 가진 학교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북한산의 은혜로 숲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였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진 숲.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산속의 숲이었지만 공기가 좋았고,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었다. 13일의 금요일에 떨어진 벼락에 부러진 나무에서는 변형된 괴담들이 줄줄이 이어졌었다. 수년 전, 새 도로가 그 숲을 관통하게 되면서 숲이 사라져 버렸다. 아, 하늘까지 뻗어 있던 나무들의 숲이 그리워.


2. 아무리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학교가 이렇게 작게 느껴질 일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학교는 반토막이 나 있었다. 연못과 작은 동물원, 도서관 건물과 외부 화장실 건물이 있던 모든 자리가 학교 담장 밖이 되어 있었고, 담장 밖의 그곳은 모두 도로가 되어 있었다. 아니, 세상에 모든 길을 도로로 만들 셈일까. 내가 그때 그 시절 담당이던 친구들과 매일같이 쓸고 닦고 물고기, 토끼와 닭, 오리 등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놀던 그곳이 그렇게 서글퍼졌을 줄이야. 홍콩할매가 나타나서 폐쇄시킨 외부 화장실 건물까지 그리워.


3. 초등학교 뒷문,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수많은 길 중 하나의 입구에 있던 구멍가게. 거기서 항상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랑 서로 바꿔 먹어가며, 연탄불에 이것저것 구워 먹었다. 지금 고기 굽는 실력이 그때부터 쌓인 것일까? 그때도 꽤나 잘 구워서 구워달라고 줄을 선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구멍가게 할배가 좋아 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다. 수업 시작종 치는 것도 모르고 먹고 굽고 놀다가 찾으러 나온 선생님한테 혼나던 그 시간이 그리워.


4. 산 아래로 내려와 다니던 중학교 안으로 들어가 봤다. 양말공장이라 부르던 회색 빛 신관 건물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그 신관 건물 꼭대기에 있던 도서실에서의 추억이 그리워. 그 앞에 있는 테니스 계단에 앉아 놀던 기억이 그리워. 그 계단 중 그때도 깨져 있던 귀퉁이가 여전해서 고맙고 반갑다. 매점의 떡볶이는 여전히 끈적이고 맛있을지, 쥐포는 여전히 맛있게 구워져 팔리는지 궁금하다. 그때 그걸 같이 나눠 먹던 아이들도 그리워.


5.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과는 반대방향이었지만 동네 경치를 볼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장소가 있었다. 그렇게 높은 곳도 아니었는데, 어린 내게는 높았던게다. 거기에 가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있었다면 그리 크지는 않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커다랗던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 위로 올라가면 마치 산이라도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들떴다. 좀 더 높게, 좀 더 넓게 동네를 내려다 봤다. 지금은 바위도 없고, 바로 앞에 건물들이 들어와 경치를 볼 수도 없다. 그때 보던 경치도, 기분 좋았던 바위도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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