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ysuN Dec 05. 2022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그리움

한때는 매 시간, 매 분, 매 초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이 내 생활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갇혀 있지 않았던 나에게는 쉴 새 없이 현재의 시간이 흘러들어왔고 상대적으로 그리워하는 일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시간이 약이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시간이라는 약은 그리움을 작게 쪼개고 또 쪼개었다. 그러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그리움은 아주 작고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 한편에 놓였다. 그리고 그 덩어리는 아주 가끔씩 마음속을 굴러 다닌다. 도르륵 도르륵 소리를 내면서 굴러 다니면 나는 그 소리에 반응하게 된다. 잊고 있던 그 덩어리가 떠오르고 떠오르는 순간 아주 작아져 버린 덩어리는 원래의 크기와 맞먹는 기억과 느낌을 되살려 놓는다. 아주 빠르게. 너무 빨라서 갑자기 질식이라도 할 것처럼.


엄마는 오랜만에 집에 있는 나와 족발이라도 나눠 먹을 생각에 족발을 시켰다. 그 족발을 기다리며 덩어리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아파지고,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이 쏟아졌다. 대처하지 못할 상황이 오면 잠이 쏟아진다. 꿈에서는 깜깜한 공간 안에서 작은 보라색 공을 뒤쫓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더니 식탁 위에는 내 몫으로 남겨진 족발이 있었다. 족발을 한 입 물어다. 새우젓이 혀에 자극을 주었다. 슬펐다. 머리는 까치집처럼 헝클어졌고 허여멀건한 얼굴에 족발을 한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생각했다. 


커다란 컵에 차가운 물을 담아 방으로 돌아와 즐겨찾기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틀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갔다. 하얀 바탕에 오밀조밀 꾸며진 사이트를 휠마우스를 정신없이 굴려가며 봤다.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그 사람의 사이트에 있는 글과 그림과 사진과 음악들은 이미 외울 만큼 수백 번, 수천번 보고 들었다. 소설책을 읽듯 196페이지를 다 읽고 보고 들었다. 다 읽고 나자 슬픔도 그리움도 잦아들었다. 도르륵 굴러가는 소리도 멎었다. 그 사이트는 내가 즐거웠을 때의 기록들 뿐이니까. 그때에는 즐겁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마저도 즐거움으로 기록되었으니까. 그 시간대로 돌아가 그 사람과 그때의 그 기분을 한껏 만끽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사회 시스템의 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