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오랜 나의 루틴
십 년을 넘게 강남 쪽으로 출퇴근을 하며 내게 힐링이 되어 주었던 것은 한강이었다. 출근길의 한강은 출근길의 한강대로, 퇴근길의 한강은 퇴근길의 한강대로 좋았다. 점심시간에 왕복 40여분의 거리에 있는 한강공원에서 한강멍 때리던 건 보너스. 한강과 하늘은 일종의 루틴이었다.
그중에 퇴근길의 한강을 유독 좋아했다. 정시 퇴근을 추구하던 나였기에 퇴근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한강은 일명 "개와 늑대의 시간"에 만나는 한강이었다. 늦은 낮과 짙은 저녁 사이에 있는, 아직 해가 져가고 있는 시간대의 한강. 그냥 그 하늘과 한강을 흘러가는 버스에서 보고 있노라면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버텼구나, 수고했다-하고 봐주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작년 말에 한강을 잃었다. 새 회사 위치는 한강을 건너지 않기 때문에. 정말 가끔, 어쩌다가, 혹은 애인이 드라이브시켜 주면, 한 번씩 한강을 봤었는데 대부분 어두운 밤의 한강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일이 바빠지면서 나의 그 하늘도, 그 한강도 그냥 잊어버리게 됐다.
며칠 전, 외근을 나갔다가 퇴근시간에 물려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면허인 속 편한 나는 뒷자리에 앉아 앞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늘만 계속해서 쫓았다. 실시간으로 색이 변해 가는 걸 보니 딱 그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하늘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아 차 창밖으로 빠지지도 않는 목을 빼내어 올려다보았다. 아,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그냥 조금 울컥했다. 내가 잊어버린 동안에도 너는 항상 있었겠구나, 너무나 오랜만이야- 혼자 망상을 하며 그 하늘에 감성을 들이부었다. 겨울 끝자락의 건조함에도 오랜만에 보는 그 하늘이 좋았다. 흘러가는 나와 그 시간대의 하늘은 오랜만이었으니까. 한강 위였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하늘로도 감사했다.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한때 나의 루틴이었던, 그 하늘에 생각보다 괜찮은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높은 건물 몇 개를 지나자 진해져 버린 하늘에 "개늑시가 끝났다."라고 읊조렸다. 다음엔 꼭, 한강 위에서, 그 시간대에 흘러가는 나, 이렇게 다시 조우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