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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pr 20. 2017

윗물이 맑아야 해

그래야 아랫물도 맑지


자살한 혼술남녀 신입 PD가 계약직 동료들을 정리 해고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몹시 괴로워하였다는 글을 보고 문득 수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으로 내 팀이 생겨서 좋아 어쩔 줄 몰랐던 때의 기억이었다.


상사가 나를 불러 내 팀원 중 한 명을 퇴사시키라고 했다.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지만 그저 자르라고만 했다. 내 팀원은 네 명이었다. 자를 이유도 없었고, 자를 사람도 없었고, 자르고 싶지도 않았고, 내겐 다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정말 괴로웠다. 퇴사시킬 사람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자꾸 자르라고 압박을 줬다. 


나는 두려웠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계속된 압박에 나는 결국 한 명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과를 했고, 팀원을 가졌다 하더라도 아직 입지가 그렇게 다져지지도 않은 잔챙이 시절이었음에도 다른 회사를 알아봐 주었다.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고 불안요소였다. 내가 선택한 팀원은 내 마음을 알아줬고, 다행히 다른 회사에 자리가 나서 그곳에 면접을 보게 해서 합격하였다.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두고두고 죄책감을 가지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 사람을 퇴사시키고 상사가 나를 불렀다. "000 씨를 퇴사시켰다고?"라더니 마구 웃으며 "네가 네 손에 피를 묻힐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했는데 묻혔네? 잘했다. ㅋㅋ 그렇게 크는거야. ㅋㅋ 가봐. ㅋㅋ"라고 했다. 결국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내가 해고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가 알고 싶어서 내게 그런 짓을 시키고 그 사람에게 그런 짓을 당하게 만든 것인가.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내 팀원들을 이런 미친놈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머리 굴리기 시작한 것이. 그래서 항상 우리 팀은 다른 팀이랑 돌아가는 방식이 달랐고, 지금은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랑 돌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회사의 규모나 하는 일, 시스템? 다 필요 없다. 결국은 모두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들인데 저런 미친놈이 위에 있으니 아래에서 죽어 나가는 것일 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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