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문이 따로 없는 너와집이라 노장군은 곧바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두드렸다. 노장군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 너가 여긴 왠일이야. 행색이 왜 이래?”
노장군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은 빙고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얼음지기라 불렀다.
삼척에는 석회동굴이 흔하였다. 그중 바위틈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동굴은 여름에도 서늘하여서, 몇 곳을 어민들이 조직한 어방(漁坊)에서 사용할 천연 얼음창고로 개조하였다. 겨울에 얼음을 채워 보관하였다가 여름에 꺼내어 생선에 재우면 내륙 부자들에게 비싼 값을 주고 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징어가 많이 잡힐 때면 얼음은 요긴하게 쓰였다.
본래 부모를 봉양하며 산골 돌밭 한 마지기로 연명하던 얼음지기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남다른 체력 덕분이었다. 뙤약볕을 피해 한밤중에 얼음 지게를 지고 먼 포구까지 내달리려면 보통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음지기는 관솔에 불을 붙여 어두운 방안을 비춘 뒤, 도토리죽을 끓여 와 노장군과 형주에게 내밀었다. 배를 채운 노장군이 얼음지기에게 나지막이 청했다.
“나는 오대산 월정사 인근 화전 마을에 연고가 있어 그리로 피하려 하네. 머지않아 삼척 관아의 포졸들이 이곳을 샅샅이 뒤질 텐데, 경계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게”
밤길을 헤쳐 나가는 일이야 그에게는 별것이 아니었으나, 얼음지기는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꾸어 노장군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노장군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삼척의 어부들은 명태나 청어 떼를 쫓아 돛 한대 박힌 야거리를 몰고 울진 연안까지 내려오곤 했다. 어느 날 조업 중이던 배가 갑작스러운 해일로 뒤집히게 되었다. 그때 초선(哨船)을 끌고 정찰 중이던 노장군이 목숨을 걸고 사나운 파도를 뚫으며 노를 저어 가 어부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이 일로 삼척 어방과 인연이 닿은 노장군은 마침 동굴 얼음창고의 관리자를 구한다는 소식에 힘이 좋은 지금의 얼음지기를 소개했다. 돌밭으로는 부모 봉양이 힘겨웠던 얼음지기에게 노장군은 은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지? 같이 탈주했나?”
“숨으려고 바닷가 절벽 동굴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있는 걸 발견했구먼. 군졸들이 뒤따라와 도망치는데 이 친구도 나를 따라왔어.”
형주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지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니? 자네가 누군지는 아는 건가?”
얼음지기가 황당한 듯 묻자 노장군이 대신 대답하였다.
“지금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듯싶네. 어쨌든 나는 조금 쉬었다 오대산으로 갈 건데, 자네는 어찌하고 싶나?”
형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었었다. 얼음지기는 대신 형주에게 제안을 건넸다.
“오대산 가까운 강릉에 내 아는 사람 있으니 그리로 데려다 주지. 어떤가?”
강릉이란 말에 형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강릉이라고?’
형주는 강릉에 소재한 고등학교에서 육상부 생활을 하였다. 자신이 성장했던 곳인 만큼, 이 난데없는 혼란 속에서도 강릉으로만 가면 무엇이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밤길을 가로지르는 얼음지기의 발걸음은 신중했다. 관아에 비상경계령이 떨어졌다면 곳곳에 포졸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얼음지기는 포졸들이 알지 못하는 길, 주로 약초꾼들이나 화전민들이 이용하는 길을 찾아 나아갔다. 횃불 하나 없이도 그는 길을 잘 찾았다. 여름 한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얼음을 날라야 했던 고된 노동으로 그의 눈은 야행성 동물 수준이었다.
“한 여름 새벽에 배가 들어오면 제 때 생선 상자를 얼음으로 채워야 하거든. 해가 지자마자 지게에 짚을 깔고 얼음덩어리를 올려서 포구로 달려가야 해.”
얼음지기는 자랑삼아 형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얼음지기가 앞서는 길은 길이 아닌 듯싶은데도 나무를 헤치면 이어지고는 하였다.
“여기는 나라에서 사람들 출입을 막은 봉산(封山)일세. 사람 다닌 흔적이 지워져 길 찾기가 어렵겠지만, 내 뒤만 잘 따르게”
금강소나무가 울창한 삼척의 산들은 대부분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얼음지기는 겨울과 여름철에만 일이 있었기에, 봄에는 약초를 캐고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따러 산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그는 산짐승처럼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다. 삼척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이 잘 닦여 있었으나, 산줄기 또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수가 많지 않은 포졸들은 주로 해안길에 배치되었을 터이니, 힘이 들어서 그렇지 산길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금강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얼음지기는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러운 소나무 껍질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자네 한양에 가본 적 있나?”
“그 먼 한양을 내 어찌 가보겠나? 우리 같은 수군은 어디 마음대로 다니지 못해.”
“가끔 한양에서 이 금강송을 베어 오라 하면 마을이 난리가 났어. 소가 오르지 못하는 태백산 줄기는 사람이 옮겨야 했으니까.”
“자네가 그 일을 했구먼.”
“그렇지. 내가 힘이 좋으니 목도(木道) 꾼으로 부려 나무 나르는 일을 시켰는데, 멜대를 메는 것이 얼음지게 지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들더라.”
“한양까지 짊어지고 갔다는 건가?”
“이 사람. 길이 트이면 다시 소가 끌고 영월까지 가서는 뗏목에 싣고 경강(京江, 한강)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지. 난 그 뗏목을 얻어 타고 마포나루까지 몇 번 가 보았어”
“한양은 어떻든가? 사람들이 그리 많다던데?”
“그럼. 집도 많고 저잣거리에는 오일장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정신 팔다 대감나리 말굽에 채일 뻔한 적도 있었다니까.”
“흐흐. 나도 보부상들한테 한양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구먼”
둘은 도망가는 처지도 잊은 채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수평선 낮게 깔린 구름을 한참 벗어난 해가 어느새 푸른 하늘 한가운데서 사방을 비출 즈음, 일행은 이미 삼척의 경계를 벗어나 있었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좋겠어. 이제 나는 여기서 서쪽으로 반나절만 가면 숨을 곳이 나와.”
“그래. 거기 있다가 세상이 잊을만하면 다시 돌아와”
“저 친구도 잘 부탁해. 제정신이 아니니 혼자 내버려 두면 큰일 날 것 같아.”
“이 친구는 대관령 아래 구산 참으로 데려갈 거야. 역참(驛站)에는 과객이 머물 곳이 많으니 며칠 잠자리는 어렵지 않을 걸.”
구산 참이 있는 곳까지는 북쪽으로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해가 서쪽 산등성에 걸려 잠시 머물 무렵에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구산 참은 깊이 드리워진 대관령의 산그림자 속에 적막하게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