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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ochondria Studio Aug 20. 2018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다는 어쩔 수 없음

화사효과

마마무의 멤버 화사가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곱창을 그렇게나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전국의 사람들은 화사의 방송을 보고 홀린 듯 가까운 곱창집으로 향했고, 급기야 곱창 수급 대란이 일어난다. 이러한 기현상을 일컫는 신조어가 바로 화사효과다.


우리 동네에는 최근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곱창집이 하나 있다. 가게 이름은 별X품X곱창. 기름진 포만감이 필요했던 아내와 나는 새로 생긴 집 근처 별X품X곱창 분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유리창에 “화사효과”를 언급하며 부득이 호주산 곱창을 사용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었다. 제공되는 음식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에 들어가면 뭔가 자세한 설명이 있겠지 생각했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는데 양이나 가격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강남 8 학군 지역에 살면서 대치동 학원에 다닌다고 다 서울대에 가는 건 아니다. 똑같은 원리로 호주산이라고 무조건 맛이 없을 리는 없다. 등급의 문제지 고향의 문제가 아니다. 한우보다 뛰어난 호주산 소고기도 있다. 그래서 우선 모둠 곱창을 2인분 시켰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냥 식감만 곱창이었다. 혀끝에 감지가 불가능할 정도의 담백함이 전해졌다.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보다도 이것보단 감칠맛이 있을 것 같았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계산을 해주시는 분에게 사장님이시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신다. 그리고 뒤쪽 빈 테이블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청년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물으셨다. 

“무슨 일로 그러세요?”

사장님도 아닌데 싫은 소리 하기가 그래서 말끝을 좀 흐렸다.

“맛이…”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말을 받아치셨다.

“맛있어서요?”

어이가 없어서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니요. 맛이 없어서요.”

아주머니는 매우 당황하시며 사장님에게 눈빛을 흘기며 말씀하셨다.

“손님께서 맛이 없으시다는데?”

핸드폰을 만지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청년 사장님이 다가왔다. 그는 당당한 태도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호주산을 써서 질길 거예요. 소마다 품질 차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사장님의 대답을 들으며 나도 어쩔 수 없이 여긴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구나 다짐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 이곳이 어떤 곳이냐 물어보면 어쩔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식당 벽에는 이런 것들이 '당당히' 붙어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영향으로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대응방식이다.

첫 직장으로 대형 식품업체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담당 분야가 식품 소재 영업이었다. 대기업에 밀가루, 설탕, 기름등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일을 주로 했다. 당시 어떠한 형태로든 잠재 거래처에 원료의 수급 곤란이 생기기를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다. 경쟁사가 수급에 펑크를 내는 그 순간이 최고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사 담당자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다신 만날 일이 없는 거래처가 되느냐 더 신뢰할만한 거래처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영향에 대응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이 대응에 따라 존폐의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기존과 같은 조건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이상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쉬어가는 결단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때 금전적 손해가 뼈아프게 다가오겠지만, 이 손해는 반드시 신뢰라는 보이지 않은 자산이 된다.

얼마 전 작고 단단해 보이는 아귀찜 집 하나가 있어 방문한 적이 있다. 둘이서 아귀찜을 먹으러 가면 어김없이 생기는 고민이 있다. 뻔한 대답을 예상했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소자 시키면 둘이 먹을만해요?"

사장님은 수도 없이 받았을 질문에 능숙하게 답변하셨다.

" 우리 집 아귀찜 소 짜는 부실 해. 그런데 해물찜 소자는 더 부실해! 아구 많이 먹고 싶으면 중자는 시켜야 돼!"

답변을 듣자마자 고민이 사라졌고 선택했다.

"그럼 중으로 주세요."

콩나물을 남길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한 편, 화사효과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저녁. 난생처음으로 곱창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냉동 곤드레밥을 데웠다. 

더 나은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쁜 제안에 같은 돈을 지불할 바보는 없다. 물론 나는 오늘 바보였다. 하지만 두 번은 안 속는다. 어쩔 수 있는 맛있는 곱창집은 널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내 잘못도 아니고, 그 결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져 어떤 수를 찾을 것이다.

중요한 가치 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음 안에서 어쩔 수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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