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굽는 건축가 Oct 26. 2021

시간이 흐르는 모양

빛이 들고 바람이 지나고 계절이 지날 때 시간이 지난다고 느꼈다.
한 해가 지나고 나이가 먹었구나
본채 서쪽에 달린 낮은 창을 둔 오두막 너머 들녘의 벼 이삭은 자기 무게만큼 고개를 숙이고 여름을 닮은 푸르름은 풍성한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지금도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페루에서 온 커피를 마신다. 커피맛을 아느냐고 질문을 받는 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그날의 커피맛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 벼들이 익는 냄새가 난다. 노랗게 익은 벼들에서는 노란 향이 난다.

다이보 선생과 모리 선생의 ‘시간이 흐르는 모양‘이라는 구절을 만났을 때
˝음~ 시간의 흐름을 경험한 선배님들이야,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분은 자기들의 시간을 알고 계셔 좋은데˝ 나도 두 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의미가 있었음을 알아주는 찻잔에 담긴 따스한 차를 마시면서 사람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알아 볼 때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기품과 깊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생기는가 싶다.
각자의 길을 가는 세상에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지만 한 길을 가면 그 길을 걸어가는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모리 선생과 다이보 선생의 <커피집>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경험이 아닌 이야기와 추측으로  커피의 세계를 엿보고 있다.

나에게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커피해피 사장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로스팅을 할 때 시간이 중요해요. 제가 지금은 로스팅 시간을 제 때 맞추어야 해서 이렇게 서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네요˝
커피 원두가 떨어지면 찾아가는 커피해피에서 내 자리는 정해져 있다.
로스팅을 하고 있는 사장님의 맞은편 긴 테이블이다.
눈을 마주칠 수 있고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긴바에 앉은 나에게 짬을 내어 막내린 드립 커피를 종류별로 내어주는 사장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표정과 몸 짓, 몇 마디의 말 속에서 커피의 깊은 세계를 즐기고 있는 장인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 표정을 놓치기 아까워서 아주 빠르게 사장님의 얼굴을 스케치 하기도 하고 커피잔과 커피향을 노트에 옮겨 올때도 있다. 아마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은 풍경도 좋지만 내 손맛이 들어간 작은 스케치가 풍경들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커피는 페루에서 온거에요. 페루의 능선을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평온해요, 변화가 없이 기나긴 길을 걸어가는 그런 풍경이 생각하는 커피 맛이에요˝

새로 들어온 원두가 있으니 어떤지 맛을 보라며 내어준 페루 커피에서는 한 번은 다녀오고 싶은 나만의 페루 향이 담겨 있다.

˝커피의 신맛은 신선한 원두가 아니면 끌어 올리기 어려워요. 원두를 태우지 않고 원두안에 들어있는 신맛을 이끌어 올리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을 찾아내는 일이 매일 다르죠. 주위의 온도와 습도, 로스팅을 하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달라져요. 오늘은 날씨가 습해서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매일 하는 일이지만 원두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주의를 기울이고 예민해야 좋은 산미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막 내린 커피 한잔을 감사히 맛을 본다. 오늘 모리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커피 이야기도 겯들이게 된다. 커피는 커피 자체의 맛이 있지만 커피를 둘러싼 분위기가 반은 차지 한다.

종종 건축주들에게도 커피 원두를 선물 할 때가 많다.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좋은 원두를 선물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건축주들도 이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커피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찾을 수 있다면,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나의 건축에서도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런 건축주들을 만나고 싶다. 이른 아침 쌀쌀한 바람이 느껴지는 가을날 커피향을 즐길 수 있는 건축주들을 만나서 커피한잔을 마셔야겠다. 나에게 참 좋은 건축주들이 많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수 있는 것은 흐르는 시간을 중심으로 볼 때 세상은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커피향도 좋고 바람들어 손 때 묻어 가는 나의 작은 집도 좋다.

오늘은 나의 작은 오두막 커피집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발견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지의두 가지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