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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Aug 13. 2021

무지의두 가지유형

'나'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여름날 책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을 두고 한 달 가까이 아껴가며 읽는 책도 있고,

매일 아주 조금씩 그 뜻을 밝히기 위해 곰곰이 이해하며 읽은 책도 있습니다. 

아끼며 읽는 책 중에는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치 한 번에 다 먹기 아쉬워서 아껴두며 먹던 달달하고 진한 초콜릿 같은 책입니다. 그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오랜 시간 이해와 음미가 필요해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책도 있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아티샤의 명상 요결>이 그렇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는 기회가 있을 때,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며 "마음이 힘들 때,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 달라이 라마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읽어 보면 도움이 된다고 하며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로 줄 때는 한 사람을 소개하는 마음과 비슷하더군요. 읽을 사람에게 괜한 수고스러움을 주는 것은 아닌지 살짝 염려도 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선물이고 읽고 안 읽고 까지는 제 몫이 아니기에 가볍게 건네줍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늦은 시간이나 심심할 때, 스트레스가 있을 때, 어떤 상황들을 잠시 잊고 싶을 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필요할 때, 도움 되는 책입니다. 이쯤 되면 웬만한 신경안정제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6년에 담당하던 건축 프로젝트로 인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과 사람들에게 부침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잠자기 전에 읽던 책입니다. 한 번에 읽기가 너무 아까워서 아주 조금씩, 고양이가 새를 잡기 위해 살금살금 걷듯이, 고양이와 달라이 라마가 느끼는 다른 시선의 세상에 매일 다녀오곤 했었습니다. 


요즘은 <아티샤의 명상 요결> 중에 한 페이지를 두고 며칠을 읽고 있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네요.


<무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한 가지는 우리가 실제적 본질, 우리 자신의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일종의 '무지'다. 두 번째 유형의 무지는 우리가 아닌 것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그 속에 자아도 없는 '나'와 '나의 것'일 수 없는 것들을 '나'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두 가지 오류가 무지의 본질이며, 고통의 근원이다. _ 아타샤의 명상 요결 중에서 >


'나'와 '나의 것'일 수 없는 것들을 두고 '나'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구절에 걸려 다음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같은 페이지에 책갈피를 제자리에 놓아두고 거듭 읽고 있습니다. 뜻을 풀이하기 위해 앞뒤 문맥도 읽고는 있지만, 글로 전달받은 '의식의 본질'에 대해 맞장구치지 못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한 권의 책을 한 두 달에 걸쳐 읽는 독서 습관 덕분에 마음에 부담은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두고두고 그 뜻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꺼내들 책이 한 권 더 있기는 합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입니다. 두꺼운 책을 감싸고 있는 하드커버에 새겨진 결이 있는 질감의 표지도 좋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글과 시대의 풍경에서 대나무 밭 바람소리처럼 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입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손으로 제도를 하고 모형을 만들던 시대의 건축설계사무실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제도 펜으로 도면을 그리고 손으로 건축을 배우던 기억을 갖고 있어서 그럴까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책장에서 꺼내 더운 여름을 지나왔는데, 이번 여름은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네요. 아마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책만 읽을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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