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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Aug 22. 2021

벌레보다 한 발 빠르게

연잎차와 토르티야

발효종으로 반죽을 해서 토르티야를 만들고, 연못에서 따온 연잎으로 덖은 차를 마시고 있다. 가을의 초입이 설레는 이유다. 동네 연못은 눈으로 보는 계절의 색뿐만 아니라 입과 코로 느낄 수 있는 가을을 안겨준다. 어쩌다 보니 늘 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집중하고 소리와 모양에 담긴 느낌은 습관처럼 놓치며 산다. 청년 시절에 배운 차를 덖는 일은 그 시간 그 계절에 나를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난해에 덖어둔 차가 조금 남았지만 다시 가을이 왔으니 새 차를 덖는다. 그래야 겨울, 봄,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연잎차를 몇 번 덖고 나면 이제 새 겨울이 오겠지.   

# 1  밀가루 반죽하기
밀가루 반죽을 할 때의 느낌이 살아난다. 우리 어린이 어린 시절에 만지던 엉덩이 살 같다고 할까?
물의 양에 따라서 탱탱한 찰기가 재미있다.

˝아빠 나도 해볼래˝라는 딸에게 이 재미난 것을 아이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순간적인 충동을 슬그머니 숨기고
˝응 그래 딸 반죽해봐˝라며 자리를 내준다. 반죽하는 일이 힘도 들어가고 찰기가 있어 손에 많이 묻는 일이라서 그런지 어린이는 재미있어하다가 나에게 다시 넘겨준다.


˝오늘 빵은 어떤 거야?˝
˝응 오늘은 물을 좀 많이 넣어서 반죽이 질어, 대신 빵은 조금 더 부드러울 것 같아! 치아바타 빵 알지?˝

#2. 연잎차 덖기
마을 연못에서 백련 잎을 따서 연잎을 덖기.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입구에는 연못이 있다. 미꾸라지, 피라미, 개구리, 다슬기가 물속에서 살고 있고, 장구벌레, 잠자리 유충들도 있다. 키가 크고 핫도그처럼 생긴 부들이 있고, 물에서 잘 자라는 버드나무, 연못이라 할 만큼 충분히 여러 종류의 연꽃들도 있다. 연잎의 지름이 30센티 정도 되면 꽃이 피고 지는 때를 기다려서 연잎을 따온다. 연잎 따는 때를 놓치면 진딧물도 많고, 벌레들이 먹기 시작하니 호시탐탐 지켜봐야 한다. 벌레보다 한발 더 빠르게!
한 번에 한 개의 연잎을 따서 연잎차를 만든다. 연잎차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다.

레시피를 소개하자면


연잎을 고른다.
연잎을 따서
잘 씻고
물기를 빼준다.

그리고

차 덖는 팬을 중불로 달군다.

연잎을 도마에 올리고
녹두두께로 썰어준다.

달구어진 팬에
연잎을 올리고

이때부터 서두르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며
나무 숟가락과
손가락을 이용해서
덖어준다.

덖기를 마치는 시간은
두 가지로 알 수 있다.

덖어진 연잎의 색과
덖는 냄새다.

눈과 코와
손가락의 열기로 적당한 때를 안다.

핸드메이드 한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삶은 내가 어느 계절에 서 있는지
어느 시간을 달리고 있는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맛, 촉감을 두루 이용하면서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토르티야에 야채를 숭숭 썰고, 잼을 넣고
막 덖은 연잎차를 마시면
좋다.

가을이 왔다.
이 계절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풍성함의 크기가 깊이가 달라진다. (2019년 10월 19일)

마을 연못에서 가져온 연잎차 우리 동네에서 연잎차를 만드는 유일한 아빠라는 역할에 은근히 뿜 뿜 하고 싶은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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