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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Oct 27. 2021

은밀하고 으스스한 다락에서

보물창고 ‘다락‘

우리나라의 과거 민가 건축에서는 안방·부엌·다락은 서로 인접되어 있었고, 생활에 있어 안주인의 장소였다. 부엌의 바닥은 안마당 보다 60cm 내 외로 낮게 만들어져, 바닥에서 지붕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지붕 아래 공간을 이용하는 attic(다락)과 loft (고미 다락방)은 장기간 보관되는 물건들의 장소다. 집을 의뢰하는 건축주들은 ˝우리 집에 다락은 꼭 필요하다˝고 한다. 어린시절 다락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 다락에 놓인 물건들을 기억하며 추억을 물려주고 싶어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다락방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새집을 지을 때 다락을 꼭 두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와 책에 나오는 상상력의 장소 이자 추억의 장소이며,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장소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상력이 이어지려면 다락이라는 장소가 그에 걸맞은 깊이감과 높이, 은밀함 같은 일종의 장치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다락에 오르는 동안 삐걱 거리는 계단 소리도 요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고미다락의 어딘가에는 창도 있어야 할 것이고 빼꼼히 빛이 들고, 그 창으로 한밤에 달도 걸려야 맛이 나겠다. 다락의 창을 수직으로 세워 두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살그머니 경사진 다락 창이 어울린다. 

아뿔싸! 우리 집 다락방!  문학적 상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락 창문. 우리 집은 수직으로 긴 창이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작가들이 보았다면 너무나도 평범한 창을 가진 우리 집 다락방. 집을 지을 때 오로지 기능적인 창을 만들었다. 우리 집을 지을 때 난 왜 이토록 정직한 집을 지었을까?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락은 ‘소망‘에 가깝다. 그동안 건축주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왔다. ˝다락이요 아이들이 크면 올라가지 않아요, 창고로 쓰일 거예요˝ 상상력이라곤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집을 안내한 세월이 10년이 넘는다. 다락을 두고 ˝상상력이 풍부한 장소가 되도록 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00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마저도 수납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지붕 아래 장소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의 부족한 상상력과 문학적 소양이 없었음을 두 손 모아 참회라도 하고 싶다. 다락은 보잘것없고 작은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한 장소 이상의 성격을 갖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소는 은밀하고 사랑스럽고 신비스럽고 때론  으시 으시 한 그런 장소다. 다락에는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 곳곳에 있다. 물건들은 오랜 기간 그곳에 있었고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장소다. 엄마의 일기장, 연애시절 편지 꾸러미, 아기 때 입히던 아이의 옷과 수십 번도 더 읽어 서 낡은 동화책들이 쌓여 있는 것이다.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다락방을 좀 더 다락방스럽게 만들어야겠다. 왜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었을까? 우리 집 다락방은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할머니네 집 부엌 위에 만든 다락방을 연상하고 만들었다. 어린이가 크는 동안만 사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상상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다락스럽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10년 전에는 ‘다락스럽다 ‘라는 표현을 알지 못했다. 
다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다락을 선물하고 싶어 진다. 쓰기 편한 은밀하고 넉넉한 다락방. 공사를 앞두고 있는 김포 주택은 은밀하고 상상력 풍부한 지붕 아래 고미 다락방을 준비하고 있다. 드레스룸을 겸용하면서 작지만 경사진 천창으로 하늘과 한강을 볼 수도 있고 조용히 쉬면서 엉뚱한 꿈을 꿀 수 있는 장소로서 말이다. (2019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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