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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Oct 28. 2021

밀싹라떼, 보리싹라떼

2019년 11월 30일

겨울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달력을 얻어오고, 텃밭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구들방에 넣을 나무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겨울은 많이 춥습니다.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는 봄이 되면 알게 됩니다. 


“비닐하우스에 쓸 비닐을 사려고 해요”

“얼마나 필요하세요?”

“2미터에, 6미터 정도 필요해요”

매장 점원은 잘라서는 팔지 않으니 사려면 롤 형태의 제품을 전부 사야 한다고 하네요. 한롤의 가격이 4만 원이라는 소리에, 겨울 동안 길러 먹을 채소값보다, 비닐 값이 더 나오겠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다음에 온다는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데 2020년 달력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사장님 달력 하나 가져가도 돼요?” 물건도 안사고 염치없이 달력만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라도, 시골 살림에는 매월 농작물 관리, 병충해 관리가 나오는 하얗고 큰 달력이 필요합니다. 


겨울에도 야채를 먹으려면 텃밭에 비닐하우스가 있어야 합니다. 인근 동네 어르신들은 사람이 들어갈 만한 비닐하우스를 만들지만 우리 마당에는 그 정도 크기의 비닐하우스가 들어가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높이는 50센티, 폭은 1미터 , 길이는 5미터 정도 되는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닐하우스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듯하군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겨울채소용 비닐온실’이라고 하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온실용 철사로 뼈대를 세우고, 반원형으로 비닐을 덮고, ‘우리밀 운동본부’에서 구입한 보리와 밀을 뿌리고 그 위에 다시 상토를 얇게 덮어주면 됩니다. 한 시간도 안 걸리는 비닐온실 텃밭을 이제야 마무리하게 됩니다. 보름 전에 계획을 세웠는데 날이 추워져서야 몸이 움직입니다. 


보리싹과 밀싹은 겨울 동안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녹즙을 내어 마실 수 있어서 주변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있습니다. 보리싹 녹즙은 진한 말차(녹차가루를 타서 마시는 녹차)와 비슷한 맛이 납니다. 달짝지근해서 한 번은 우유에 타서 먹어보니 진한 녹차라떼 같은 맛이 났습니다. 딸아이에게 먹어보라고 했는데 아이는 자기는 안 먹겠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보리라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밀싹도 보리싹처럼 달달한 게 맛도 있어서 마시기에 적당합니다. 제가 밀싹과 보리싹을 녹즙으로 마신다고 하니 지인 중에 한 분은 잔디도 그렇게 마시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잔디 녹즙은 마실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잔디 맛이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고양이도 안 먹는 잔디를 즙으로 마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어 달 전에 뿌린 보리싹은 크게 자라서 보기 좋은 낟알이 달렸습니다. 겨울 풍경으로 보려고 놓아 두고 있는데 동네 고양이들이 핥아먹고 있습니다. 우리 집 깜선생(고양이)과 동네 고양이들(5마리)은 낮에는 새를 잡고 밤에는 쥐를 잡아먹으면서 생식을 하고, 자기들이 필요한 만큼의 채식은 동네 텃밭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 동네 고양이들은 ‘자기들만의 레시피(Recipe)’가 따로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고양이들이 쥐와 새를 어떻게 잡는지는 다음번에 상세하게 글로 써보아야겠네요. 고양기가 쥐 잡듯, 고양이가 새잡듯 하는 풍경에 대해서 옮겨보겠습니다.          


정원에 있는 야외 수전이 얼지 않도록 보온비닐로 감싸는 일도 겨울 준비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새로 나온 제품들은 비싸기는 해도 얼지 않도록 개선된 수전이 있는데, 우리 집 외부 수도는 옛날 제품이라 겨울이 되면 보온을 해주어야 합니다. 때를 놓치고 나서, 얼은 후에 물을 녹이는 일은 내년 봄이 되는 2월 말까지 기다려야 가능합니다. 수도가 얼면 수도꼭지와 내부 부품도 같이 망가져서 교체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울을 만만히 보았다가는 괜한 고생만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씩 겨울 채비를 해야 합니다. 책 주문할 때 같이 오는 비닐 뽁뽁이로 수도를 둘둘 말고, 끈으로 잘 매어주면 됩니다. 여기서는 버리는 물건이 얼마 없습니다. 


비닐도 재활용을 하고, 봉투도 버리지 않고 차 곡차고 접어두었다가 물건을 넣어두기도 하고, 놀러 왔던 지인들이 돌아갈 때  빈손으로 보내기는 아쉽고 해서 먹거리를 담아서 보낼 때 쓰임이 좋습니다. 버리지 않고 차곡히 모아둔 종이 쇼핑가방에 넣어서 건네줍니다. 올해만 해도 고구마, 단호박, 고추, 모과를 그렇게 나누어먹고 있습니다.    


산에 낙엽도 지고, 지게를 지고 다니면서 쓰러진 나무나, 잔가지들을 주워서 뒷마당에 쌓는 일도 남아 있습니다. 이번 주까지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옷을 바꾸어 입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고, 서리가 두껍게 내리기 시작하니, 자주 보이던  뱀과 개구리들이 보이지 않네요. 겨울채비를 하러 들어간 것이 분명합니다. 다람쥐들도 보이지 않고요. 겨울 준비로 도토리와 밤을 잘 모아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도 어머니가 보내주신 고구마가 몇 박스 있으니 아궁이에 넣어 굽기만 하면 됩니다. 이번 겨울에는 일을 좀 줄이고 집에서 딸아이와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보리라떼와 밀싹라떼를 생산하는 비닐온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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