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굽는 건축가 Oct 28. 2021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2019년 10월 29일 정원사의 집을 그리면서

<하지만 이 세상의 건물을 짓는 우리들의 99.99999%는 천재가 아닌 평번한 인간들이지 않나. 그러니 그러한 디자인적 자유를 강요하는 것이 부당한 요구라는 사실이 차츰 밝혀지게 되었지. ‘새로운 ‘ 생각만이 강요되다 보니 건축가들은 참고할 만한 전통을 잃었고 건축가 아닌 이들은 기댈 만한 지침을 잃었네._Hal box 교수의 건축가처럼 생각하기 중에서 >

건축주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안내하는 일이 즐거움이자 도전 같은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건축가로서 새로운 장소는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귀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 생각만이 강요되다 보니.... 전통을 잃었고..... 기댈만한 지침을 잃었다 _저자의 글에서 위안을 얻는 느낌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안도감도 드는  아침입니다. 매일 새로운 글을 한 편씩 써야지 하던 제가, 오늘은 예전에 써둔 글들을 찾아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자기 집을 짓고 싶은 분들과 아래 글을 공유하고 싶어 지네요. 


새로 짓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이 글을 쓰는 2018년 7월 기준)
주방가구도 들어오고, 스위치와 콘센트도 설치되고 있습니다. 긴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쨍쨍하는 계절에 입주를 앞둔 집입니다.
정원을 위한 땅을 고르고, 배수로를 설치하고 빗물을 담을 집수정을 몇 곳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노 반장님 언제 오셨어요?”
“예 어제 거창일 마무리 하고 이제 넘어왔어요”
“거창 마무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
“예 그래도 마무리되어가는 일이니 수월합니다. 집이 단정하고 간소하니 보기 좋네요.”

오랫동안 우리들과 일한 노반장님의 평가에 안도의 마음이 듭니다. 아직도 평가에 연연하지만 건축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현장 식구들의 느낌은 누구의 평가보다도 비중이 큽니다.
입주를 앞둔 집은 정원사 가족이 살 곳입니다.

정원사인 건축주는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지 3년이 넘었고, 지난 3년 동안 틈만 나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정원사는 정해진 땅도 없고 어떤 집을 지을지 염두에 둔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행복을 설계하듯이, 아이들과 놀던 동네 이야기, 형제들과의 추억, 마당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을 실타래처럼 기분 좋게 풀어내었습니다. 각별했던 개인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아껴두었던 비밀을 다 들은 것만 같습니다. 저만 그런 것일까요? 누군가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정원사는 딱 1년 전에
“집을 지어야겠어요.”
“가족들과 상의는 하셨어요?”
“네 결정을 했어요. 집을 짓기로요”
“축하드려요, 그럼 이제 잔소리 좀 해도 되겠네요?”
“그럼요 건축가가 하는 잔소리는 약이 되지 않겠어요!”
“건축주의 남편이 되기로 하셨으니 마음고생도 좀 하실 겁니다.”

정원사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의 잔소리’를 공개해보려고 합니다.

정원사의 가족은 모두 5명입니다. 큰아이는 조경 대학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아마도 2년 후면 대학에 진학하고 집을 떠나겠지요.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가 부모님과 가장 오래 있을 식구 같네요. 집은 작아도 되겠어요!” 이렇게 해서 정원사의 집은 4개의 방 대신에 2개의 방과 1곳의 서재가 만들어졌습니다. 당분간 부부는 서재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랬더니 방에 대한 미묘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더군요.

 #1 방, 방, 방이라는 글자보다 장소에 어울리는 근사한 표현을 찾아볼까요.
우리는 방이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예를 들면 안방, 작은방, 주방이라는 대명사들입니다. 방의 용도를 한정시키지 않고 쓰임을 크게 보는 것은 어떨까요?

<햇살 드는 방>, 아침에 책 읽기 좋은 <책마루>, 차 마시기 좋은 <향기 나는 차실>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방은 개개인의 소유를 넘어 장소를 공유하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어떤 곳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의 화합과 커뮤니티가 높은 집일수록 방문을 닫지 않고, 잠은 거실에 모여 자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집에 안 쓰는 방이 너무 많아요.”

#2 작게 짓고 넓게 사는 비법 공개.
잠자는 방 크기를 줄여서 방은 잠만 자는 곳으로 결정하고 거실, 식당, 주방, 화장실, 현관, 수납 같은 서비스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세요. 화장실은 한 개만 만들고 변기, 세면기, 샤워실, 세탁실로 구분하여 한 장소에 묶되, 기능은 분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양치하고 샤워하고 변기를 사용하면서 동선이 섞이지 않도록 가벼운 벽으로 구획해 보세요. 프라이버시도 확보하고, 공간도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공사비용도 절감되고 청소도 단순해집니다.

아파트 문화가 들어오면서 미닫이문이 여닫이문이 되고, 문을 닫고 나면 ‘끊김’이 찾아오는 단절이 있습니다.
“정원사님 화장실은 하나만 만들고, 방문은 모조리 미닫이문으로 합시다.”

#3 이웃이 있는 동네를 만들어 볼까요?
동과 동이 모여 아파트가 된다면, “집과 집을 모아 동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어떻게 동네를 나 혼자 만드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막막한 제안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전 저의 대책 없는 제안은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원사는 동료 정원사 두 가족을 꾀어내어 한집은 옆집 이웃이 되기로 했고, 또 한 집은 뒷집 이웃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옆집 김정원사는 주택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뒷집 황정원사는 어떤 집을 지을지 철학적 점검을 하는 중이라고 할까요? 아직은 설계 전이지만 주변 지인들에게 열심히 ‘나의 이웃이 되어 주세요.’라며 홍보를 다니고 있습니다.
“혼자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나의 자발적인 고독을 같이 즐길 이웃들을 찾아보세요. “

#4 아빠들의 자리
가족을 위한 집을 짓는데 남편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가 원해서 집을 지어요. 전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요, 바쁘잖아요! 집에 있는 시간도 얼마 없고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정도는 있으면 좋겠어요.”
이런 아빠들을 만나다가 최근에는 자기 자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새로운 TYPE의 아빠 두 분을 만났습니다.

아빠 1.
“나에게 고독한 방을 만들어 주세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제가 있을 고독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고독한 장소이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공부방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나를 위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기타도 치고 영화도 볼 수 있는 크기면 됩니다. 될 수 있다면 멀리 산을 볼 수 있는 큰 창을 만들어 주세요. 풍경을 보고 싶군요.”

아빠 2.
“저에겐 저만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업무의 특성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될 때가 많습니다. 그곳에서 일도 하고 아이들과 책도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오더라도 그곳은 저를 위한 장소입니다. 저에게 빛이 잘 드는 장소를 만들어 주세요.”

아빠의 자리에 대한 질문을 하는 제게, 정원사는
“제 장소요? 여유가 되면 몰라도 실내는 아내를 중심으로 하고 싶어요. 저는 정원만 있으면 됩니다. 정원은 지붕 없는 또 하나의 방이거든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저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정원을 즐기고 싶어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원사의 가족도 이제 곧 동네살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웃이 있는 동네는 생활의 패턴이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옆집에 살아도 왕래가 없는 이웃들이 아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가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차를 마시며 요즘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영화를 같이 보며 소감을 나눕니다. 소탈한 텃밭의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어 먹는 생활 덕분에 1년 열두 달 든든한 울타리에 사는 것 같습니다.

작은 단위로 이웃을 이루어 살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집니다. 직업과 자동차를 포함해 옷 색깔, 쓰는 모자, 즐겨먹는 술, 말버릇, 정원 가꾸는 모습, 좋아하는 취미, 기르는 반려동물의 종류,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저녁 먹고 동네 산보하기 모임 같은 것들입니다. 남들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입만 아프죠. 꾸밀 필요가 없으니 살다 보면 소소한 나의 모습을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잘 알게 됩니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나쁜 것이 아니라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는 이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죠.

36평에 2층 집이 필요했던 정원사의 집은 저의 잔소리 덕분인지 단정한 1층에 28평의 아담한 집이 되었습니다. 대책 없는 저의 제안에 이웃들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붕 없는 또 하나의 방을 원했던 정원사의 집은 ‘이야기가 있는 정원 같은 집’을 주제로 마당정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정원사의 집에 들어가는 순간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편안함과 ‘이것이야’ 하는 느낌이 있는 생활하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정원사는 지붕 없는 방에서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1년 후에 정원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싹라떼, 보리싹라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