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답사와 커피의 산미
< 어떻게 하면 커피를 잘 내릴 수 있을까요?라고 손님에게 질문을 받으면 ˝키워드는 천천히 천천히입니다.˝라고 답해요..... 자연계에 작용하는 열과 중력에 맡기고, 물은 한 점으로 집중시켜 떨어트리는 편이 좋습니다. 융 필터 전체로 물을 돌리며 움직이는 것보다 커피 자신이 만든 가루의 층 속에서 가능한 한 자연의 힘으로 떨어지게 하는 편이 솔직한 맛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요리조리 움직이는 것보다 열과 중력의 관계성과 천의 역할에 맡기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이보 선생과 모리 선생의 ‘커피집‘ 중에서 >
˝소장님 여기 커피 해피예요, 전화 괜찮으세요?˝
"그럼요 사장님 반가워요˝
˝지난번에 말한 커피 로스팅 공장 견학을 가려고 하는데 동행하실래요?˝
˝좋은 기회인데 가야죠˝
˝시간이 좀 그래요. 목요일 저녁 7시나 8시 정도 될 것 같아요. 매장을 정리하고 가야 하니 늦게 되었네요. 너무 늦지요?˝
˝늦어도 가야죠. 기다리던 견학이잖아요˝
˝그럼 모레 7시에 뵙도록 해요˝
운영하는 매장에 변화도 주고, 로스팅 시설도 확장하기 위해, 견학 일정을 준비하던 건축주이자 로스팅(Roasting) 공방을 운영하는 양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한 분야에서 내공 있는 손맛을 일구어 가는 로스터(Roaster)들의 작업장을 엿볼 기회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가야죠"라며, 목요일을 기다렸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보기 아까웠는지 함께 일하는 이 소장에게도 ˝견학 시간은 조금 늦는데 함께 갈래요?˝라며 제안을 합니다.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담아내는 장소를 만들어 내는 일이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즐거운 과정입니다. 더구나 로스팅 공장이라니! 좋은 기회가 온 것이지요. 여기서 잠시 멈추어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스팅 공장에서 ‘공장‘이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조금 거슬리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공장이라고 하면 왠지 정서도 없고 손맛도 없는 기계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겠지요. 로스팅 샵, 로스팅 하우스, 로스팅 팩토리... 아무래도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그냥 로스팅 공장으로 해야겠어요.
약속한 목요일 저녁 공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공장‘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무지에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커피 배전 공장에도 사람의 손맛과 정성, 무엇보다도 커피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맛과 향을 담은 좋은 커피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임을 제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기 전 공장(工場)과 보고 난 후 공장(工匠)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물건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라 커피를 아끼는 사람들(커피 장인)의 장소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로스팅 공장(工匠)은 눈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찰리의 초콜릿‘을 연상시키면서 말입니다. 공장의 운영방법이나, 창고의 위치, 위생실의 구성, 시설의 배치, 사무실의 역할, 공장의 운영 방법과 기구들의 배치를 떠나서, 가장 좋은 커피맛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네요.
양 선생님과 견학 공장의 사장님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는 모습에서도, 시대를 넘어서는 커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어린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기계식 설비가 완벽해도, 이곳에서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의 마음만큼 중요하지는 않아요. 창립 초기부터 디자인과 회계, 로스팅, 상품 발송 등등 각자의 분야에 맞게 일을 했어요. 하지만 커피를 즐기지 않는 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더군요. 그때부터 매장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이 디자인과 회계업무도 같이 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작은 연구실이지만 커피맛 하나를 두고도 싸워요. 그래도 개인의 이익이 아닌 커피 본연의 것을 두고 논쟁을 벌이니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피맛이 좋아지더군요. 앞으로 다른 계획들도 있어요.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죠.˝
로스팅 공장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기계설비와 장소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좋은 장소를 보면 어딘가에 담아내는 습관이겠지요. 시간만 넉넉하면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다른 질문들도 하고 싶었는데, 욕심을 다 채우는 대신 분명한 이유가 있는 보물상자 같은 장소들을 몇 컷 담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장소, 사이와 사이에 생활하는 장소를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건축가들처럼 커피 장인들도 산미 속에 감추어진 단맛을 찾아내고, 단맛 속에 감추어진 산미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산미와 단맛, 쓴맛의 경계를 다루는 그들은 저처럼 사이를 여행하는 여행자들 같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막 로스팅한 커피를 안겨주기에 넙죽 받았습니다. 마음이 뿌듯하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마실 커피 생각 때문이겠지요.
오늘 아침 사무실에 앉아 커피맛을 봅니다.
그나저나 이 커피 산미가 입안 가득히 남아서 길게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