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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오늘 나온 빵

2019년 11월 7일


<빵을 굽는 베이커에게는 필요한 재료가 몇 가지 안 되기 때문에 한 번 빵을 굽고 다음에 또 빵을 굽는 과정들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 가지 믹서로 충분히 여러 종류의 반죽을 믹싱 할 수 있으며, 몇몇 바게트 천이나 발효 틀, 적절한 저울, 튼튼하고 좋은 작업대, 칼집 내는 데 필요한 몇 개의 면도날, 그리고 튼튼한 오븐 등과 같이 필요한 것이 얼마 없다. 하지만 밀을 파종하고 빵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손과 기술이 필요하다. 제프리 헤멀먼의 브레드 중에서>

˝뵙고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
전화 통화를 해도 받지 않으시고 문자를 해도 답변이 없습니다. 
지난 7년간 건축 안내를 하고 설계를 마치고 공사까지 마무리 한 곳입니다. 

공사 중에 공사비 지급이 늦어지면서 현장 식구들의 오해와 중심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논쟁으로 인해 하나 둘 쌓인 불협화음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현장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이 힘들고 마무리를 위해 건축주와 현장 식구들 사이에서 조율하며 아파하던 곳입니다. 

7년 간 일을 하면서, 어떤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할지, 건축가가 사물을 보는 관점까지 새롭게 일깨워 준 건축주는 저에게는 단순한 고객을 넘어 삶의 길을 새로이 일러주는 선생으로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남쪽으로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이 같은 길이고, 만나는 대상도 같은 대상이고, 장소도 같은 장소인데, 운전을 하며 내려가는 내내, 마음은 불편하고 안타까움에 몇 번이고 깊은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현장 식구들의 서운함, 건축주분의 상황과 마음 쓰임도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건축은 서비스야 충분히 서비스를 하고 실리를 챙기면 되지˝라는 말도 듣고 ˝건축주는 건축주 일 뿐이야˝라는 위로의 말을 전해 듣기도 하지만 동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만나 보아야 하기에 몇 번의 연락 끝에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두동의  큰 건물에는 의미가 담긴 이름의 간판이 단정하게 달려 있고, 일 년에 몇 번 물이 가득 차는 강에는 햇빛을 받은 물결이 윤슬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건물은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아만 있었습니다. 
건축주분은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음에도 2시간이 다 되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들, 제 입장에서 답답했던 상황들도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대표는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책임을 진다는 것, 살림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까지, 예전처럼 웃음 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건축가를 아껴주시는 마음을 느끼고, 인사를 마치고 올라왔습니다.

올라오기 전에 잠시 들린 두 동의 건물은 살림살이도 많이 갖추어지고 건물이 갖고 있는 특징들도 잘 살려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큰 사고 없이 건물이 완공되고 쓰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멀리 보세요, 멀리 보고 가세요˝라는 말씀을 차 안 가득히 담고, 오던 길을 되돌아왔습니다. 

˝김 소장 나예요. 몸은 좀 괜찮고요?, 밥은 챙겨 먹고? 그래요 지금 뵙고 올라가는 길이에요. 그래요 견뎌내야죠. 모두 견뎌 내야죠. 당분간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겪어 봅시다. 김포 현장 진행 잘하고요. 좋은 건축주분들이잖아요. 그래요 맛있는 밥 살 테니 같이 밥 먹어요˝

운전을 하고 올라오는 중에 잠시 멈추고 10년 넘게 함께 일한 현장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건축주분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도 들려주고 상한 몸과 마음도 잘 추스르라는 말도 전해 주었습니다. 

같은 말을 두고도 이해가 다르기도 하고, 다른 것을 두고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현실세계에서는 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새로이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이번 과정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불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한 동안 느껴야 할 것 같아요.

아침에 빵을 구웠습니다. 
이번에는 3년 묵은 포도 효소와 오트밀을 넣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내는 빵이 나오는 모습에 ˝와‘‘하면서 감탄을 하네요. 
새로 나온 동그란 빵 한 덩이는 옆 집 누님 댁에 배달을 하고 왔습니다. 
빵을 받아 드는 눈매와 입꼬리에는 일상의 행복이 이런 거야 라는 듯한 미소가 가득하네요. 

˝오늘 나온 신상이에요. 맛있게 드셔요˝

어제 뵌 건축주 분도 발효빵을 참 좋아하십니다. 지난 추석 때 저에게 빵을 전수해준 선생님의 빵을 택배로 신청해서 한 다발 보내드렸었습니다. 
오늘 빵도 같이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네요. 


모양이 제법 나오면 맛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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