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선을 그려야 보이는 감각의 크기
건축가들의 몸짓
공사 현장에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동을 동시에 지어 올리는 현장 식구들도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 발걸음이 하늘처럼 가벼운가 봅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럴까요? 이제 1층 바닥이 완성되었는데, 건축가들의 눈에는 집 전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벽을 올리기 전에 현장과 도면의 차이점, 개선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는 이에 따라 민감할 수 있는 창의 위치와 크기, 수납장소, 계단의 형식 같은 것들입니다.
거푸집(콘크리트 집, 형틀)을 뜯어낸 매끈한 기초 벽과 1층 바닥 위에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됩니다. 목수들은 “이제 움직여 볼까”라며 기지개를 켜고,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에 온 건축주들도 시공 소장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현실이 되어가는 집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상세설계를 맡은 이 소장과 시공을 책임진 김 소장, 전체 구성을 잡은 제가 황선생 님의 계단과 창의 위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모임이 시작되면 건축가들의 몸짓도 다양해집니다. 연필을 쥐고 몸을 책상 테이블 쪽으로 구부정하게 숙인 김 소장, 팔짱을 끼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입술을 만지는 정 소장, 뒷짐을 하고 두 사람의 의견을 곰곰이 듣는 이 소장은 구체적인 치수를 다시 한번 계산할 준비를 합니다. 놓아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도면을 공사 중에 우리들 스스로 변경하는 일은 단순한 변심은 아닙니다. 집을 앉히고, 기초를 올리고, 땅따먹기 하듯 벽체의 밑선을 그려야 보이는 감각적인 크기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들의 현장 감각과 도면의 비율 가운데 무엇이 우선이냐고 한다면 저는 현장의 감각에 한 표를 더하게 됩니다. 도면의 장점은 한눈에 집 전체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우리들의 시야를 틀 안에 가둬두기도 합니다. 한 발을 내딛고, 눈으로 보고, 해와 바람, 하늘에 초점을 두고, 손으로 만지는 일은 1:1 실물에서만 가능합니다. 장소의 분위기와 크기를 가늠하는 일은 현장에 서면 알 수 있습니다.
1.5층에 있는 기도실까지의 접근을 개선하기 위해 계단의 시작점을 변경하고 구체적인 높이를 재설정합니다. 황선생 님 집은 기도실과 봉당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실이 없는 대신, 마루를 깐 넓은 봉당이 현관 기능과 거실 역할을 하고, 게스트를 위한 마루방도 갖추고 있습니다. 봉당은 신발을 신을 수도 있고, 외부 이면서 내부 같은 장소로 큰 창을 통해 정원으로 이어집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황선생 님에게 어울리는 구성입니다. 현관, 게스트의 방, 간이주방, 작은 화장실, 작업실 기능을 갖춘 봉당까지가 손님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봉당과 식당 사이엔 커다란 댓돌이 놓이고 그 앞엔 사적인 공간임을 인지 할 수 있는 묵직한 미닫이 문을 설치하게 됩니다. 일종의 두 번째 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댓돌의 역할은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사적인 장소입니다.”라는 암묵적인 표시라고 할까요?. 한두 달 후면 댓돌의 색깔과 크기도 정해질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 집에서 머물고 싶은 곳, 좋아하는 장소가 어딘지 묻는다면 봉당이라고 할 것입니다. 개인의 사적 공간에 침투하지 않아도 되고, 황선생 님의 봉당 자리는 모두의 장소로 손색이 없을 곳입니다. 봉당 바닥에는 여름과 겨울에 삐그럭 소리를 내는 마루가 깔리고, 화장실 벽은 나무 판벽을 세우고, 천정은 너비 8센티, 높이 15센티의 나무 장선이 72센티 간격으로 좌우벽을 지지대 삼아 건너지를 예정입니다. 세월이 가면 나무마루와 벽은 옅은 살색에서 삶이 깊어지는 만큼의 색으로 변해가겠지요. 작은 마루방과 넓은 탁자도 있으니 산속 오두막 같을 수도 있겠군요.
태안 ‘수작 사계’의 목수 참나무에게 봉당에 쓰일 주방 겸 넓은 탁자를 부탁할 예정입니다. 장소는 사용하는 사람이 쓰기 나름이지만 처음부터 구체적인 기능들을 위한 장치를 해두면 그 쓰임도 분명해집니다.
생활하는 집의 중심은 어디에 있어야 할지 살펴보는 건축가들의 진지하고 밝은 고민이 보기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