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고양이의 정원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집

by 빵굽는 건축가

집이라고 하면 건물의 형태, 현관, 창, 지붕모양, 정원 같이 눈에 크게 보이는 모습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아야만 보이는 작은 물길과 배수를 위한 집수정 같은 필수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한 액세서리 같은 필수품을 더 찾아보면 마당에서 물을 쓸 수 있는 옥외 수전, 밤에 불을 밝힐 수 있는 옥외 조명, 언제 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만들게 될 나만의 별채나 오두막을 고려한 여분의 전기 시설들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미리 챙겨두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집의 일부입니다.

다른 것들은 살면서 우선순위가 있다 해도, 집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둘 것은 물 관련된 시설입니다.

특히 여름과 겨울 계절적 변화가 심한 지역에서는 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설계 단계부터 차분히 챙겨야만 살면서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땅의 물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지만 계획단계부터 예상하고 도면에 반영을 해두어야 합니다.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수십 년을 두고 볼 때,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물입니다. 비가 오는데 물길이 없고 물을 받는 통(집수정)이 없다면 물은 세력을 합할 뿐, 나갈 곳을 잃어 땅에 스며들 뿐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제 스스로 물길을 내어 땅이 유실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경사지에 집을 짓는 경우에는 물이 모이고 흩어지는 배수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살면서도 늘 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승현이네 집과 황선생 님 댁도 기초 공사와 함께 도로의 우수관과 연결되는 큰 맨홀(집수정)을 먼저 설치하였습니다. 미리 해 두는 이유는 공사 중에 큰 비가 오더라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맨홀의 위치와 높이를 기준으로 빗물이 어디로 흘러야 할지 가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 정원을 준비할 때도 기준점이 되겠지요.

물관 관련해서는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선택의 대상이 됩니다. 장소와 집의 형태, 조건에 따라 물받이를 설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물받이가 필수는 아닙니다.

다만 나무가 많은 산에 인접했거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는 물받이 없이 지붕에서 바로 빗물이 떨어지도록 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물이 떨어지는 땅 위에 얕은 자갈 수로를 만들어 물이 튀지 않도록 계획하면 건물 외벽에 흙물이 튀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받이를 설치하게 되면 벽면에 선홈통을 설치하고 지붕의 물이 한곳에 집중해서 떨어지도록 합니다. 그런 경우 집수정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낙엽이나 먼지 등으로 인해 물홈통이 막히지 않도록 봄, 가을에 점검을 하고 물이 잘 빠지도록 해야 합니다.

일 년에 두 번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물홈통의 막힘을 점검할 여유와 자신이 없다면 물받이를 설치하는 대신 비 오는 날 낙숫물이 떨어지는 멋진 풍경을 경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한 줄 더 보태자면 집은 내 몸을 관리하듯이 늘 관리해야 하는 살아 있는 그릇이라는 점이죠.

저의 경험을 들려드린다면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사다리를 걸치고, 지붕에 올라갑니다. 올라갈 때는 낙엽이나 흙먼지를 담을 통과, 모종삽, 긴 나무를 준비해야 합니다. 집 주변에 산이 있고, 물홈통을 설치한 북쪽 지붕 근처에 자작나무와 산수유가 자라고 있어 낙엽이 많이 쌓입니다. 봄에 오르는 이유는 여름 장마로 인한 물막힘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고, 늦가을에 오르는 이유는 낙엽도 치워야 하지만, 겨울 동안 눈이 녹으면서 홈통이 막히지 않도록 점검을 해두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고, 시간을 저울질하다 보면 봄청소는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쪽을 중심으로 할 때 북쪽에만 홈통을 두고 남, 동, 서는 지붕에서 빗물이 그대로 내려오도록 해두었습니다. 살아보고 내린 평가는 북쪽만 홈통을 하길 잘했다는 점입니다. 해마다 청소를 해도 들고 올라간 5리터 통에 가득 차게 됩니다. 어찌 보면 집에도 때가 끼는 셈이죠.

집이라고 하는 장소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빗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땅을 딛고 사는 처지에서는 물이 어디로 흐를지,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에 따라 나무를 심는 위치, 물길을 내어야 할 곳, 오두막이 있으면 좋을 장소들을 알게 됩니다. 누가 뭐라 해도 땅 위에 사는 즐거움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나만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Handmade life’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겠지요. 야무지게 역할을 하는 두 손과 두발이 쉴틈이 없기는 해도, 손발을 움직여 나만의 장소를 일구어 가는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있는 생활의 즐거움입니다.

올해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을 조금 더 키워보려고 합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모아 만든 연못인데, 크기라고 해봐야 지름 1미터가 채 되지 않지만 고양이가 물을 먹는 곳이기도 하고 연못 주변에 있는 장미와 텃밭이 물공급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 정원을 관리할 때 도움이 됩니다.

비 오는 날에는 물표면에 그려지는 동심원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작은 팁이라고 하고 싶군요. 더 추워지기 전에 지붕에 올라가 낙엽을 치워야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집 정원은 고양이의 정원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리는 제가 하고 있지만 정원 전체를 즐기며 낮잠을 자고 나무와 지붕에 오르고, 새를 쫓아 달리고 편안하게 배변을 보고 하늘을 향해 벌렁 눕는 고양이야말로 정원을 즐기는 진정한 가드너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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