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악마 '캘시퍼'
보일러, 아궁이, 벽난로
건축현장에서 외부 마감 공사는 이후 일정을 가늠하는 변곡점이 됩니다. 승현이네와 황선생 님 외벽이 마무리되면서 현장에는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지붕과 외벽공사를 끝내고 높은 곳에 오를 때 사용하는 안전 발판(비계)을 빼고 나니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돕니다.
비계가 빠지면서 도로와 연결되는 땅도 자유를 얻은 듯이 편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로와 연결하는 지하매설물 공사 중에 도시가스와 상수도, 우수관 공사가 있습니다. 상수도와 우수관은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비계를 빼고, 도시가스가 연결되면서 온몸에 피를 돌게 하듯 실내에 온기를 전해주는 보일러를 설치하였습니다. 설비 이사장님 말씀처럼 더 추워지기 전에 고생을 덜게 된 것이죠.
보일러가 없던 시절에는 아궁이와 벽난로가 사람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집안에 온기가 있어야 살만한 장소가 되는 것처럼 불은 집안 어디에선가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일러는 금속 박스 안에서 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궁이와 벽난로처럼 휘글 거리며 타오르는 붉은빛을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금속 박스 안에서 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도 불이 나옵니다. ‘캘시퍼’라는 불꽃 악마가 ‘하울의 성’에서 심장 같은 존재로 등장합니다. 불꽃이 사라지면 성도 무너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불꽃을 보호하고 살려내는 등장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겨울이면 불꽃을 살리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가로 1.8미터, 세로 2.4미터의 작은 구들방을 데우기 위해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나무가 타면서 내는 스펙트럼 같은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빛을 캔버스에 올려놓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떠오릅니다. 그가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면 아궁이 불을 살린 그림 한 점은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궁이 불은 몸이 느끼는 질감의 빨간 온기라고 할까요?
보일러는 작은 버튼 하나로 외출, 예약, 온수, 온도 설정이 가능하지만 아궁이는 그런 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아궁이 방은 이불을 덮어놓고 온기를 유지하는 ‘겨울 생활’이 있을 뿐입니다.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에 보일러보다 매력도 있습니다. 보일러의 장점은 나무를 할 일도 없고, 재를 치울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벌겋게 오르는 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벽난로를 놓는 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궁이와 달리 벽난로의 매력은 쭈그려 앉지 않아도 되고, 의자에 폼나게 앉아 눈과 몸으로 온도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와인을 즐기고, 상대의 얼굴 대신에 불빛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의 깊이와 편안함도 아궁이와는 다른 경험입니다. 아파트와 도시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집안에 뜨거운 불을 두는 곳은 주방이 유일합니다. 그나마 주방도 전기쿡탑이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불을 볼 수 없게 되어갑니다.
승현이네와 황선생 집도 보일러 덕분에 집안에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집이 열을 내기 시작한다는 소리는 한 겨울에도 집안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표현과 동일해집니다. 앞으로 남은 공사들은 바닥 마루, 타일, 도배, 페인트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물과 관련한 공사들이기 때문에 일평균 기온을 4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종일 보일러를 틀어놓고 공사를 하게 됩니다. 보일러를 돌리면서 건물 내부에 필요 이상으로 남아 있는 습기도 제거하고, 방수도료, 접착제, 마감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배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틀 전부터 욕실 방수공사와 주방 타일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집주인의 눈 맵시 기준이 된다고 하는 타일을 주방과 보일러실, 화장실에 붙이고 있습니다. 타일이라는 재료를 선택하는 기준은 물을 사용하는 장소에 있습니다. 황선생 집은 현관과 이어지는 봉당에도 크고 짙은 타일을 깔게 됩니다. 봉당(토방)은 집주인의 성격에 따라 언제든 흙이 뭍은 신을 신고 다닐 수 있는 곳입니다. 온실이자 응접실, 현관이자 작업실이기에 거친 나무 소재와 타일을 두고 고민하던 중에 깔끔한 집주인을 닮은 검은 톤의 타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황선생 집 봉당에 벽난로를 두어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불꽃 ‘캘시퍼’가 봉당에 자리 잡으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불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캘시퍼’처럼 다정한 불꽃을 두고 있는지요? 저는 제 가슴에 두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