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굽는 건축가 Dec 31. 2020

동네의 힘

염소가 사라진 마을 

“안녕하세요, 옆 동네 식구들이 염소를 키워보려고 하는데 염소 분양이 가능할까요? 예, 예 암수 한 쌍을 키워보려는데 처음 길러본데요. 네 사장님께서 잘 알려주세요” 아내가 염소농장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염소 분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원사 가족이 살고 있는 이웃동네 장미마을에서 봄맞이용 상큼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보다 조금 빠르게 제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서도 몇 해 전에 염소와 돼지, 당나귀를 길러 보자는 의견이 마을 회의에 공식적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진지하지만 우스개 소리가 담긴 의견들을 서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동네도 크지 않은데 손바닥만 한 텃밭 작물을 모두 먹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먹이는 누가 먹일 것이며, 염소 집은 어디에 둘 것인지, 겨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와 염려를 회의 내내 한 끝에, 결국은 말잔치와 즐거운 상상만을 가득 담고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네와 다른 분위기일까요? 아니면 잘 몰라서 일지, 그렇지 않으면 성향이 다른 것일까요? 시내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장미마을 식구들은 염소를 기르기에는 별 연관성이 없는 피아니스트, 교사, 디자이너, 정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염소와 가장 가까운 직업이라면 정원사들이 있기는 합니다. 정기 마을회의에서 염소를 기르기로 합의를 보았고, 염소분양받을 곳을 찾고 있던 중에 우리 가족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지역에서 인연도 많고 유쾌함과 호기심이 가득한 성격의 아내는 염소를 기르는 곳에 바로 전화를 하고, 염소 분양을 받으려면 어찌해야 할지, 가격은 얼마인지 알아보고 장미마을 총무인 준서 아빠에게 전화번호를 건네주었습니다. 


염소농장 사장님과 통화를 나눈 준서 아빠는 주말에 염소를 데리러 가기로 하고, 몇 사람이 함께 가서 어떻게 기르는지 알아보고 데려오는 것으로 하더군요. 눈치를 보아하니 이 동네에 염소를 길러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준서 아빠는 “암수 한 쌍을 분양받아 시작해보는 거니 오늘내일 중으로 일단 염소 비용을 입금하세요.”

저녁 식사를 초대받아 갔던 아내와 저는 그만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에 닭도 아니고 염소를 길러본 적도 없는데 일단 분양부터 받고 보자는 장미마을 사람들의 천진난만함은 동네 꼬마들보다 더 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우리 동네보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장미마을 식구들은 앞뒤 걱정 없이 누군가는 알아서 할 것이라는 ‘공동의 믿음’으로 염소를 기르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실은 이것이 진정한 마을의 힘이기도 합니다만 생명을 보살피는 일인지라 조금 염려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닭을 한 번도 길러 본 적이 없었지만 10마리 가까이 기르고, 일 년에도 몇 차례 병아리가 부화되는 것을 보고, 2년 동안 크기를 늘려가며 닭장만 세 번을 새롭게 지어보았으니 염소 몇 마리 기르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염소가 올지 모르지만 불쌍한 염소가 되지 않기를 관심을 갖고 지켜볼 방법 외에는 없는 셈이고, 우리 동네 형님들 중에 어렸을 때 염소를 길러본 형님들이 계시니 그분들께 부탁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건축가들이 제말에 동의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땅을 밟고 산다는 일은 우리들 몸에 내재되어 있는 DNA 중에 뭔가를 상당히 자극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 서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젊은 가족들이 이런 자극적이고 유쾌한 상상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고민 없이 실행에 옮긴다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무한한 상상력은 시끌한 수다에서 시작해서 본능에 깊이 새겨진 무엇인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탐험가 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건축가들은 닭장은 물론 돼지와 당나귀, 염소우리도 계획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생활의 일부가 되는 여러 가지를 고려한 디자인과 배치, 공사가 되지 않으면서 어찌 생활을 이해하는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고양이 핀두스의 일상을 동화로 그려낸 스웨덴 출신의 건축가이자 동화작가인 '스벤 누르드크비스트'의 동화에 나오는 '핀두스'라면 이런 상황을 뭐라고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아주 멋진 생각이에요 마을 여러분 염소를 기르기로 해요. 저에게 이웃이 생기고 좋지요. 안 그래도 심심했었는데요. 그렇게 해요. 닭도 기르고요." 마침 장미마을에도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 마리인 고양이 '루니'도 반가워하겠지요?    


딱 일주일 전에 염소 이야기가 시작되고 장미마을에 염소가 왔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염소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어젯밤 톡을 받았습니다. 


“염소가 사라졌어요.” 


밤 10시 정원사의 마을 카톡에 올라온 소식을 보았습니다. 재미난 소식인데 장미마을 식구들이 겪었을 한밤중 소동을 우리 동네 SNS 톡에도 올렸고 우리 동네 식구들도 같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염소도 안 길러보고 뭔 염소래, 그나저나 걱정이네 어서 찾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 소식은 제가 장미마을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취재한 후에 서재 식구들과 공유하도록 할게요.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시대에 저마저 생각으로 글을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니 자세한 내용을 취재 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밤사이 염소는 잘 잤는지 , 정원사님의 잠자리는 편안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어떠한들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네요.   <2020년 3월에>


염소 이름은 '돈나' 마돈나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수컷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암컷 혼자 있어요. 어젯밤에 가출했던 염소입니다. 집 짓고 남은 자재로 지은 염소우리가 모양을 제법 갖추긴 한 것 같은데 왠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동네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민들레와 봄소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